과거 청산에 발목잡혀 개혁 동력 상실
이 사령관은 정기인사 때도 아닌 시기에 중장이 아닌 소장 계급으로 사령관 직무대리에 임명됐다.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중장 진급시켜 기무사령관에 앉히겠다는 송 장관의 의중이었다. 송 장관의 ‘특명’을 받은 이 사령관은 취임하자마자 ‘고강도 개혁TF’를 꾸려 기무사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 해 9월 출범한 ‘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와 지난 해 10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계속된 ‘국방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TF’를 거치면서 개혁안이 추가돼 4번째 고강도 개혁TF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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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공개로 관련 조사가 또 이뤄지면서 기무사 자체 개혁안은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었다. 국방부는 “기무사 자체 개혁으로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기무사 개혁위원회’를 구성해 기무사의 정치개입·민간사찰 근절, 특권내려놓기를 중심으로 기무사의 명칭·조직·규모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무사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에 대해 일각에선 ‘기무사 흔들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무사의 힘을 완전히 빼 더이상 ‘권력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모두 송 장관에게 보고된 사안이기 때문에 사실상 송 장관의 의중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송 장관은 지난 4일 열린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에서 “과거 정부시절에 있었던 기무사의 불법 정치개입을 확인했다”면서 “2014년 세월호 사고 시 유족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꼬집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문건이 기무사가 세월호 사건 범정부대책위원회에 참여하며 얻은 정보를 정리한 문건일 수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 조사 없이 민간 사찰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기무사는 국민에게 군의 명예를 대단히 실추시켰다”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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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도 사실 억울한 측면이 있다. 기무사는 기본적으로 국방장관이나 청와대 등 정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기무사의 정치 관여 의혹이나 세월호 관련 TF 활동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사안들이었기 때문에 윗선이 개입돼 있다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군의 속성상 기무사가 상부에서 허용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기무사령관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지휘체계 문란일 수 있지만 청와대 하명이 있으면 국방장관을 건너뛰고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다.
특히 기무사령부는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 규정된 조직이다.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 장경욱 기무사령관은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의 인사 난맥상을 청와대에 보고했다가 청와대의 눈 밖에 나 6개월 만에 쫓기듯 퇴임했다. 또 100기무부대장과 기무사 참모장 및 2부장 등 장군들도 인사 조치됐다.
기무사도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다른 권력기관과 같이 국회통제를 받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정원의 경우 국회에 수시로 보고하고 통제를 받지만 기무사는 정기국회 때만 관련 상임위인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한 번 보고하는게 전부다. 국방장관이나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가 있어도 드러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군 관계자는 “기무사가 수시로 국방위와 정보위에 대공 관련 정보나 조직운영 사항을 보고하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며 “기무사가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