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대한민국이 또 하나의 기록을 써냈다. 한국전쟁 이후 유례없는 초고속성장으로 전 세계를 깜작 놀래킨 한국이 지난해 합계 출산율 0.98명을 기록했다. 0명대 출산율은 유일무이하다. 인류 역사상 대규모의 기근이나 전염병, 전쟁과 같은 외부충격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라고 한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130조원 넘는 돈을 저출산 예산으로 쏟아부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저출산 극복이 국가적 어젠다가 됐지만 정작 최근 수년간 저출산 문제를 취재해온 기자가 만나는 주변인들 누구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취업문 뚫기가 바늘구멍이라고만 해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여자들이 자꾸 사회에 진출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며 혀를 차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리니 말이다.
정책당국자 역시 마찬가지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저출산대책을 만든 한 전문가는 “정부부처 관계자들과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지만 정작 어떤 대책을 쓸 것인지 각론으로 들어가면 자기부처 예산에 손대고 싶어하는 관료는 아무도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들 저성장에 기업하기 힘들다, 살림살이 팍팍하다는 불만을 늘어놓는 마당에 아기 키우는 엄마·아빠를 특별히 배려해줄 여유도 없어 보인다. 심각하다 하면서도 정작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우리가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솔직한 속내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냉정하게 앞을 내다볼 때다. 빠르게 악화하는 저출산 문제를 이대로 뒀다가는 우리 경제·사회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돈을 벌어다주는 젊은이는 없는데 부양해야 할 어르신만 넘쳐나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당장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벌어질 일이다. 앞서 저출산·고령화를 겪은 일본이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겠다는 슬로건 하에 각종 파격적 대책을 쏟아내는 데는 이런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기자에게 저출산 해법은 오히려 명료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을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면 그만이다. 믿을 만한 공공보육시스템, 눈치보지 않고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며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인식 개선 등이다. 출근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걸리는 30분의 소중함을 모르는 정책당국자가 책상 앞에서 저출산 대책을 만드는 한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