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천사' 구제한다더니…애플·도요타 채권 사들인 연준

"특정기업 혜택" 비판 의식해 시장가중치 동일 적용
상위 6개 기업, 해외기업 또는 코로나19 영향 적어
골드만삭스 "한 번은 써도 두 번째는 효력 없을 것"
  • 등록 2020-06-30 오후 7:43:34

    수정 2020-06-30 오후 9:21:43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들인 회사채 목록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매입한 기업들의 상당수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대표 우량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연준이 매입할 기업 회사채 목록에는 도요타와 폭스바겐 등 외국계 기업들도 있었다.

결국 가만히 있어도 시장이 알아서 돈을 빌려줄 기업들에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지원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한 투자자문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연준의 회사채 매입이 미국 경제에 어떤 공익을 제공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연준이 나중에 포르셰(폭스바겐의 럭셔리 브랜드)를 임대하기 쉬워지나”라고 비꼬았다.

연준, 회사채 매입 목록 공개

30일(현지시간)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공개한 개별 회사채 목록을 보면 연준은 지난 16일부터 28일까지 86개 기업 회사채 4억2900만달러 어치를 사들였다. 이 중에는 AT&T와 코카콜라, MS, 나이키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이 포함됐다. 버크셔해서웨이 에너지도 연준이 회사채를 매입한 기업의 명단에 올랐다.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가 지분의 90%를 보유한 기업이다.

연준은 또 향후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세컨더리 마켓)을 통해 채권을 매입할 794개의 회사 목록도 공개했는데, 앞으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구입할 회사채가 바로 일본 회사인 도요타 자동차인 것으로 나타났다. 2·3위는 독일 기업인 폭스바겐, 다임러였고, AT&T, 애플, 버라이즌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연준이 중앙은행이 특정 회사에 ‘주관적으로’ 혜택을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미국 회사채 유통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회사채들의 가중치를 반영한 이른바 ‘SMCCF 지수’를 만들어 회사채를 매입한 결과다. 미국 회사채 유통시장을 그대로 복제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해외기업의 미국 현지법인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AT&T와 애플 등은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회사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 6개 회사가 지수의 10%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해당 기업들이 과연 연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느냐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하는 조치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연준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연준이 푸는 돈이 코로나19 영향을 그리 받지 않는 회사나 해외기업에 흘러 들어간다는 데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아론 클레인 브루킹스 연구소 규제·시장센터 정책 책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애플 보유자가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가. 구글 회사채를 산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치명적이고 예상치 못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추락천사 비율 3.62%에 머물러

연준이 ‘추락천사’(신용등급이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회사) 회사채까지 매입한다고 밝혔을 때, 시장이 기대한 것은 코로나19로 경영에 타격을 받는 회사들의 자금난이 해소되는 것이었다. 이후 회사채 시장은 빠르게 안정됐다.

그러나 연준이 실제 구매한 회사채 중 투기등급(BBB 등급 이하) 채권은 3.62%에 불과하다. A~AAA 등급이 48.07%, BBB 등급이 48.31%를 차지한다. 당초 시장이 기대했던 것과는 괴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준은 상장지수펀드(ETF)를 산 지 2달도 되지 않아 세계 최대 신용 ETF들의 최고 보유자가 됐다. 지난 16일 기준 연준은 아이쉐어스 아이복스(iShares iBoxx) 달러 기반 투자등급 회사채 ETF(LQD) 주식 1300만 주를 보유해, 이 ETF의 3번째 소유자가 됐다. 또 연준은 290억 달러 규모의 뱅가드 단기 회사채 ETF(VCSH)와 360억달러 규모의 뱅가드 중장기 회사채 ETF(VCIT)를 각각 두번 째와 다섯번 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결과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연준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막대한 유동성이 개별 기업을 위해 사용될 경우 시장에 미칠 영향력과 이로 인한 비난을 우려하고 있다. 연준의 권한은 의회에서 위임받은 것으로, 어떤 회사채를 매입했는지 등은 차후 국회의 감사 대상이 된다. 고민 끝에 연준이 한 선택은 시장을 그대로 복사해 따라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운 어드바이저리의 탐 그라프는 CNBC에 “이는 말 그대로 우리가 하려고 했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시장이 인식하는 순간, 연준의 정책은 효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의 이번 회사채 매입 카드가 강력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다음 경기 침체 때는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최와 데이비드 메리클은 “연준이 이같은 도구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면 시장은 앞으로 모든 경기 침체에서 연준의 신용 개입을 기대할 것”이라며 “이같은 우려 때문에 연준은 이를 위기 대응의 도구로 정착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연준은 6월29일 공지를 통해 이날부터 5000억달러 규모의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 신용 기구’ (PMCCF)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유통시장에서 연준이 회사채를 매입하는 세컨더리 마켓 기업신용기구(SMCCF)와 달리 PMCCF는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것이다. 참여를 원하는 기업은 연준에 신청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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