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이번 탈북으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북한 대사관내 서열 2위에 해당하는 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은 이례적이다. 특히 그동안의 생계형 탈북이 아닌 고위층의 체제불만형 탈북이라는 점에서 최근 김정은 체제 균열이 심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용호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어 정대변인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서열 2위에 해당한다”며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에서 최고위급 인사”라고 설명했다. 태 공사는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주이집트 장승길 북한 대사 이후 탈북한 최고위직 외교관이다.
| 태용호 영국주재 북한공사 망명 후 국내입국. 사진은 태용호가 2014년 영국에서 강연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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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변인은 이어 태 공사의 탈북 동기에 대해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도높은 경제·외교적 압박이 이어지면서 북한대사관 활동이 위축된 것도 그의 탈북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영국 재무부는 유엔 안보리와 유럽연합(EU) 대북 제재 결의 대상에 오른 북한 국영보험사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 런던지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태 공사의 이번 탈북은 북한내 미치는 파장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영국에서 북한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오해와 오보를 바로 잡는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체제 선전을 담당했던 그가 북한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망명을 결정한 셈이다.
특히 올해 들어 탈북민이 크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엘리트층의 탈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달 16일 홍콩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던 북한의 18세 남학생이 현지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고, 지난 4월에는 중국 닝보의 북한 식당에 근무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정 대변인은 태 공사 한국 망명 의미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지배계층의 내부결속이 약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판단을 해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통일부는 태 공사의 이름과 관련해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태용호’는 가명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본명은 ‘태영호’가 맞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