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신고에도 4시간 무대응 경찰…안전불감증이 낳은 '이태원 참사'

"압사 당할 것 같아요"…구체적 장소 및 상황 신고해
경찰청장, 뒤늦게 현장대응 '미흡' 인정
정부·지자체 "주최측 없어서" 변명…뒷북 매뉴얼
  • 등록 2022-11-01 오후 6:09:39

    수정 2022-11-01 오후 9:15:52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좁은 골목인데, 클럽에 줄서있는 인파와 이태원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엉켜서 잘못하다 압사 당할 것 같아요.”(이태원 해밀톤 호텔 부근, 오후 6시 34분)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지금 너무 이거 사고날 것 같은데, 위험해요. 제가 영상 찍어놓은 것도 있는데 보내드릴 방법 있을까요 ?”(이태원 와이키키 매장 앞, 오후 8시 33분)

“핼러윈 파티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것 같아요. 아수라장이에요.”(이태원동 112-7, 오후 9시 02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1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해밀톤 호텔 인근에서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4시간 전부터 112에 쏟아진 신고 전화다. 1일 오전 경찰에서 밝힌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 신고 정도”와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다. 이태원 일대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는 긴급한 전화였음 물론, 현장 영상을 찍어 경찰에 제보를 한 신고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수백명이 다치고 사망하는 참사를 낳은 것이다.

1일 오후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저녁 6시 34분 112에 첫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같은날 오후 10시 15분 소방에 첫 신고 전화가 접수되기 4시간여 전이다. 당시 신고자는 신고 위치를 ‘이태원 가는 길 해밀톤 호텔 골목 이마트 24’라며 정확히 사건이 발생한 지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신고자는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 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거 같다.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거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알렸다.

이후에도 112에는 ‘인파가 많아서 관리가 필요하다’는 신고 전화가 이어졌다. 오후 10시부터는 100여건 이상 신고가 폭주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매번 “출동하겠다”, “확인해보겠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과장은 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오후 6시부터 신고 1건이 접수된 건 맞다” 면서도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 신고 정도였다”며 변명을 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은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다수의 112 신고가 있었지만 미흡한 대응으로 참사를 막지 못했다고 시인하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모든 부분에 대해 예외 없이 강도 높은 감찰과 수사를 신속하고 엄밀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주최측 없어서” 변명만 하는 정부·지자체…뒷북 매뉴얼

정부 및 서울시·용산구는 주최측이 없어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 31일 “할로윈은 주최가 없는 현상으로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용산구는 지난 27일 박희양 용산구청장 주재로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책을 수립하기도 했고, 지자체에서 주최한 행사가 아니기에 관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구청장이 올해 마련한 대책은 대부분 코로나19 방역, 소독과 주요 시설물 안전 점검, 마약물 단속에 치중한 것으로 안전 대책에는 소홀했다. 심지어 지난 2020년과 2021년에는 ‘민관합동회의’ 형태로 핼러윈 축제를 대비했으나, 올해는 용산구청 내 부서장 등이 참여하는 수준으로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아예 이번 핼러윈을 앞두고 별다른 특별대책을 세우거나 상황실을 가동하지 않았다. 시나 자치구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아닌데, 서울시가 나서서 통제를 하는 것이 적당하냐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시의 직접 주최 행사가 아니더라도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거나 여의도 세계불꽃축제 등이 개최될 경우 지하철 무정차 통과 및 차량 통제, 안전요원 배치 등의 조치를 취한 것과는 전혀 상반된다.

안전 매뉴얼이 없더라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에서는 위험이나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는 위험이나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무조항이 있다”며 “매뉴얼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뒤늦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최자 없는 행사도 안전대책을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유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오는 3일부터 지역축제에 대한 정부합동점검도 실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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