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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도살자’ 리스크에…“내년 유가 100달러” 전망도
국제유가는 70달러대 중반으로 뛰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보다 배럴당 2.8% 오른 73.6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8년 이후 최고치다.
원유가격을 뒤흔든 건 세에드 에브라힘 라이시(61) 이란 대통령 당선인의 한 마디다. 그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30여년 전 검사 시절 반정부 인사 5000여명을 숙청해 ‘테헤란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은 그다. 라이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이던 2019년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전적이 있을 정도로 미국과 날을 세워온 강경파 이슬람 원리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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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이란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에 독일까지 더해 6개국과 핵 합의를 맺었다. 이란 핵 활동을 멈추는 대신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등 제재를 풀어주는 내용이다. 오바마 전 행정부 때의 합의를 깬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지난 2018년 핵 합의에서 미국은 빠지겠다고 돌연 선언하면서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살아났고 이란도 핵 활동을 일부 재개했다.
강경파 라이시의 당선으로 핵 합의 복원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다.
내년에는 유가 100달러 시대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이같이 예측하며 석유시장의 수요와 공급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보복 소비로 이어져 석유 수요는 반등할 태세인 반면, 공급은 그만큼 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다. BofA는 “내년 석유시장은 석유수출국기구(OECD)가 좌지우지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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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도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나틱시스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는 이전 산업혁명에서 석유만큼이나 중요하다”며 과거 석유의 희소성이 1979년과 1981년 인플레 급상승으로 이어진 만큼, 반도체 공급난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몰고 올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부족 사태로 인한 가격인상은 이미 시작됐다. 가격추적사이트 키파에 따르면 아마존, 이번달부터 대만 컴퓨터 제조업체 아수스의 인기 랩톱 모델을 900달러에서 950달러로 올렸다. 휴렛팩커드(HP)는 가장 인기있는 크롬북 가격을 이달 초 220달러에서 250달러로 인상했고 지난 1년동안 PC와 프린터도 각각 8%, 20% 올렸다.
제조비용 상승도 가격 인상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족 사태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생산량을 대폭 늘렸는데, 이런 수요 급증이 실리콘웨이퍼를 비롯한 각종 금속 소재 등 반도체칩 을 만드는 재료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엔리케 로레스 HP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등 부품 부족으로 제조 비용이 늘어났고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업체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빈센트 로세 CEO도 “반도체 부족 현상을 틈타 가격을 올려 이익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에 드는 비용 자체가 늘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도체 제조업체부터 전자제품 제조업체, 나아가 소매판매 업체들까지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까지 오르면 이를 반영한 소비자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세계 3위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플렉스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적어도 1년 넘게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