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0일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후 이 같이 말했다. 금통위는 “긴축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하겠다”는 통화정책방향 문구를 통해 3.5% 금리를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를 0.1~0.2%포인트 상향 조정했지만, 빠르면 내년말께 물가가 목표치(2%)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굳이 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이는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이 제품·서비스 가격에 전가되는 데 있어 한은의 대응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가는 상향했지만 금리 인상은 필요없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2월부터 4·5·7·8·10·11월까지 7회 연속 동결해왔는데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금리를 동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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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그간 금리 동결이 가능했던 것은 물가가 한은 전망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밝혀왔는데, 이번엔 물가가 한은 전망치보다 높을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금리를 동결한 것이다. 이 총재는 “10월 물가가 3.8%(전년동월비)로 올라간 것은 유가, 농산물 등 공급 요인으로 ‘일시적’ 현상이라 앞으로 2~3개월 내려갈 것”이라며 “종전 물가 전망 경로보다 0.1~0.2%포인트 상향 조정됐지만 기조에 큰 변화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물가 전망치를 2.5%에서 3.0%로 0.5%포인트나 높였지만 내년 하반기 물가는 2.3%를 그대로 유지했다. 내년 상반기 물가가 큰 폭으로 튀어오를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농산물값 등이 크게 오른 탓도 있지만,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이 제품·서비스 가격에 전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 이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 인상되면 비용 전가가 더 커질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선 이런 우려에 ‘슈링크플레이션’(가격 유지한 채 제품 용량 축소) 등 꼼수 가격 인상 등을 압박하는 분위기이지만 한은은 기업의 제품·서비스 가격 전가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빠르게 안정시킬 경우 장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할 필요성이 낮아지지 않겠냐는 질문에 “물가상승 요인이 일시적이냐,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바꿀 정도냐, 2차 효과는 어떠냐 등에 따라 금리를 올리거나 낮추는 것이지, 금리를 올린다고 긴축 상황이 더 빨리 끝나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물가상승은 주로 공급측 요인으로 나타난 현상이라 금리를 올린다고 물가를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통화정책방향 문구에서도 이런 기조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10월만 해도 ‘통화긴축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하겠다’고 했으나, 이날 문구에선 ‘긴축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유지하겠다’고 변경했다. 상당기간은 통상 6개월을 말하는데 장기간은 6개월보다 더 긴 시간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도 “6개월보다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4명만이 3.75%로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입장이었고, 2명은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3.75%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이 10월 대비 1명 더 줄어든 것이다. 다만 한 금통위원은 10월까지만 해도 중동분쟁으로 ‘금리 인하도 열어두자’는 의견이었으나, 이날 이를 철회했다.
전문가들의 한은 금리 인하 전망 시점도 내년 하반기로 밀리는 분위기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한은 금리 인하는 빨라야 내년 3분기”라며 “최근 년간 월평균 물가상승률을 이용해 내년 물가를 추정할 경우 2%대 물가는 내년 9월초에 발표하는 8월 물가에서나 확인 가능하다. 공금요금이 인상될 경우 2%대 물가는 더 지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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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금리 인하 폭이 0.25%포인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수정된 경제 전망(2.1%)이 잠재성장률을 상회한다”며 “1회 이상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은은 중동분쟁으로 두바이유가 내년 평균 배럴당 92달러로 오를 경우 내년 성장률이 1.9%로 꺾일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반도체 등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빠르게 반등할 경우 성장률은 2.3%로 높아질 수 있다고 보는 등 성장률의 상방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두 경우 모두 물가상승률은 2.6%에서 2.8%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