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 감사합니다.”
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 텔레그램 ‘n번방’에서 미성년자 포함 여성을 상대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해 전 국민을 경악케 한 ‘박사’ 조주빈(25)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인이 아닌 성폭력 범죄자 최초로 ‘포토라인’에 섰다.
목 보호대를 하고 거만하게 기자들 앞에 나선 조주빈에게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돈을 뜯어내려고 협박했던 “손석희 (JTBC) 사장님,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 시장님 등에게 사죄드린다”면서 유명인사들을 언급,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냥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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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징역 40년’…공범 일당들도 모두 실형
조주빈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들에게도 줄줄이 중형이 내려졌다. 별칭 ‘태평양’ 이모(16)는 범행 당시 만 15세인 점이 고려돼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선고받았다. 조주빈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담임교사 딸에 대한 살인을 청부한 사회복무요원 강모(24)는 징역 13년, 거제시청 소속 공무원이었던 천모(29)는 징역 15년, ‘오뎅’ 장모(41)는 징역 7년, ‘블루99’ 임모(34)는 징역 8년을 각각 받았다. 또 다른 공범 ‘부따’ 강훈(19)과 ‘이기야’ 이원호(20·군복무)는 최근 각각 징역 30년형을 구형받았다.
“조주빈은 내 제자”라며 n번방의 ‘원조’를 자처하던 ‘갓갓’ 문형욱(25) 일당도 법의 심판을 속속 받고 있다. 문형욱의 공범 안승진(25)은 징역 10년, 김모(22)는 8년을 선고받았다. 문형욱에게는 10월 무기징역이 구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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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에 준 충격만큼 디지털 성범죄 처벌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오프라인’ 성범죄보다 적은 형량을 받기 마련이었으나 조주빈이 받은 ‘징역 40년형’은 상당한 중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법조계에선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 등 혐의만 인정됐을 때 최대 징역 15년 정도일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다. 하지만 법원은 조주빈에게 성범죄 관련 ‘범죄단체 조직 혐의죄’꺼자 적용해 예상보다 강한 형을 선고한 것이다.
한 번 퍼지면 무한 재생산되는 디지털 성착취물의 심각성을 감안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할 경우 양형 기준도 새롭게 마련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8일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확정,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바뀐 양형기준은 디지털 성착취물 제작의 경우 △기본 5~9년 △가중처벌 7~13년 △특별가중처벌 7년~19년6개월 △다수범 7년~29년3개월 △상습범 10년6개월~29년3개월 등으로 이전보다 상향됐다.
여성계 “아직 처벌 약해”…‘손정우’ 건 처럼 맹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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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해외에 서버를 두고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엄중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실제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C2)’의 운영자 손정우(24)는 우리 법원이 미국 송환을 불허하면서 풀려나 논란을 빚었다. 손정우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아동 등의 성 착취물을 게시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확정받고 올해 4월 형기가 만료됐다.
손정우를 기소한 미국 검찰은 올해 그의 출소를 앞두고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강제 송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은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 인도조약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며 송환을 불허했다. 바로 석방된 손정우는 현재 자유의 몸이다. 검찰은 또 지난달 ‘범죄수익 은닉’ 혐의를 적용해 손정우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여성계에서는 “사법부가 아동 성착취 범죄에 가해자 중심 결정을 내린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