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상법 제정으로 도입된 주주대표소송은 30년간의 ‘사문화’ 기간을 거쳐 이렇게 국내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이제 다시 시간이 흘러 국회 안팎에선 다중대표소송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주주대표소송은 제일은행 사태처럼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진의 행위에 대해 회사가 책임을 묻지 않으면 주주가 회사를 대리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주주와 회사의 소송이 아닌 주주와 이사진의 소송이다. 회사가 먼저 이사진에 소송하면 주주들의 소송 자격(원고적격)은 소멸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다중대표소송(상법 개정안)도 주주대표소송과 기본원리는 똑같다. 차이점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주자격의 범위를 모회사로 넓힌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은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제도다. 대표적 오해는 ‘소송 남발’ 우려다. 주주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 생각해 소송을 남발하면 결국 회사가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패소 부담을 떠안을 수 있고 승소해도 원고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금전적 이익이 없는 소송이다. 그래서 공익소송이라고 부른다. 주주에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하는 부담이 있기에 무턱대고 남발하면 주주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소송이다. 최초의 주주대표소송 사례인 제일은행(1997년)부터 2012년 말까지 법원에 제기돼 판결이 내려진 주주대표소송은 총 58건이다. 한해 평균 3.6건이고 가장 많은 소송이 제기된 2014년에 7건이 최대치다. 이 정도면 ‘남발’이 아니라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 판단이다.
다중대표소송의 해외 입법사례가 일본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다. 팩트이긴 하지만 또 다른 팩트가 숨어있다는 점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지만 수많은 판례가 있는 미국,유일하게 다중대표소송을 법적으로 명분화한 일본에는 ‘단독주주권’을 인정한다. 단 1주만 가진 주주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지분 1%를 모아야 소송할 수 있다. 상장사는 0.01%로도 가능하지만 6개월간 주식을 의무보유하고 있어야하는 특례가 있지만 시가총액이 큰 대형 상장사의 경우 주주모집부터 쉽지는 않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법개정안은 이러한 소송 제기 자격을 완화하는 방안은 빠져있다. 이를 알고도 무턱대고 소송남발 우려를 제기한다면 `오해`가 아니라 `왜곡`이다.
복잡한 법 논리를 떠나 이해관계를 떠나서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을 보여주는 아주 쉬운 예가 있다. 다중대표소송과 함께 입법이 가시화되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다. 2009년 상법 개정으로 이미 국내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회사 선택에 맡기다보니 도입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 기업명단에는 첨단IT기술로 먹고사는 삼성전자(005930)나 LG전자(066570) 같은 곳도 있다. 이전과 달리 발달한 IT기술을 활용해 소액주주들에게 주총 참여 방법을 좀더 다양하게 열어주자는게 전자투표제도인데 정작 IT기업부터 응답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