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8군사령부는 25일 오전 용산기지에 있는 사령부 영내에서 월턴 워커 장군의 동상 이전 기념식을 열었다. 미군 측은 워커 장군의 동상 이전을 용산기지 이전의 상징 이벤트로 삼았다.
워커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미 8군사령관과 유엔지상군 총사령관을 겸했던 인물이다. 최후의 방어선으로 불린 낙동강방어선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패퇴하는 북한군을 쫓아 북상하던 중 경기도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토머스 밴달 미 8군사령관(중장)은 이날 연설에서 “워커 장군 동상은 평택으로 옮겨지지만, 한미동맹의 ‘같이 갑시다’ 정신은 철통같이 강력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 8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은 한미 양국 합의로 진행 중인 주한미군 평택 이전 사업의 일환이다. 지난 2003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 이전 사업은 전국 91개 구역 약 2억4197만㎡(7300여만 평)에 흩어져 있던 낡은 기지들을 중부권(평택·오산)과 남부권(대구·왜관·김천) 등 2개 권역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골자다.
16조원에 달하는 총 사업비 중 용산기지 이전비용(약 9조원)은 한국 측이, 의정부와 동두천 등의 기지 이전비용(약 7조원)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의 1억7795만㎡(5382만평)의 미군 기지는 반환되고 신규 공여 1273만㎡(385만평)를 더해 미군 기지는 7675만㎡(2322만평) 규모로 재조정 된다.
|
용산기지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고려 말 몽골군이 한반도를 침략한 뒤 용산을 보급기지로 활용한바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임오군란 당시에는 청나라 병력이 주둔하기도 했다.
용산이 본격적으로 외국군 주둔지로 자리잡은 것은 일제 치하에서다. 일본군은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용산 일대 약 300만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했다. 일본은 1914년 이 기지를 조선군사령부로 변경했고 2개 사단을 주둔시킨바 있다. 1930년대에는 중국 침략을 위한 전시물자 동원 기지로 용산기지가 더욱 확대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이곳에 미군 병력이 들어오면서 용산기지는 주한미군기지로 탈바꿈한다. 1945년 9월9일은 용산기지의 깃발이 일장기에서 성조기로 바뀐 날이다. 올해 말까지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이 마무리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