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장기화로 배송 물량이 늘어난 가운데 택배기사들이 과로사로 숨지는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하루 정도는 편히 쉬게 해주자는 의미로 지난해 8월 14일 ‘택배 없는 날’을 국내 택배 산업이 시작 된 지 28년 만에 지정해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응원했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도 출범했다.
그러나 새해가 밝아도 택배기사들은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낸다. 기사들은 “업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반박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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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해결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며 “택배사들이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진행한 ‘분류작업’과 관련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밝혔다.
오는 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생활물류서비스법(이하 생활물류법)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7일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했다. 같은 달 15일 1차 회의에서 분류작업은 택배사의 업무로 합의했지만, 29일 2차 회의에서 택배사를 대표해 참석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1차 회의 합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게 대책위 설명이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택배 분류작업을 배송작업에서 분리하도록 개념을 규정하고, 법이든 표준계약서든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에서 분리가 된다면 개선책이 되는 것으로 판단해 회사 측 제안으로 법이 아닌 표준계약서에 명시하기로 한 것”이라며 “생활물류법이 상임위를 통과한 후 택배사들은 해당 조항을 표준계약서에 넣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회적 합의기구의 판을 깼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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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하면서 분류작업 인력 투입으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생각했다”며 “택배사들은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발표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확인시켜주지 않고 있고, 조합원이 있는 곳만 투입하는 꼼수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대책위는 생활물류법이나 표준계약서에 분류작업에 대한 회사 측 책임을 명시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로 접어들고 설 명절 특수까지 더해지면서 1월 중·하순에는 사상 최대의 택배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연이어 발생했던 과로사 행렬이 또다시 재연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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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의 발표에 CJ대한통운은 “사실 관계를 왜곡한 억지 주장”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CJ대한통운 측은 “현장 구인난에도 12월 말 현재 2370명의 분류작업 지원 인력이 투입됐으며, 오는 3월 말까지 투입을 완료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12월 투입된 분류작업 지원 인력 228명 중 102명(44.7%)은 지난해 10월 택배종사자 보호 종합대책 발표 이후 투입됐으며, 2회전 배송 인력 투입은 전체 인원의 55.3%로 11월 이후 이들에게 지급된 비용은 회사와 집배점 협의에 따라 추후 정산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대책위가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정상적인 종사자 보호대책 이행에 대해서도 악의적으로 낙인을 찍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는 택배기사와 종사자 보호 종합대책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진행 경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마련한 1차 합의를 파기 한 것이라는 대책위 주장에 대해서는 합의기구에 참여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합의 자체가 없었다”는 입장이라고 회사 측은 전했다.
한편, 대책위가 공개한 사회적 합의기구 1차회의 결과 자료를 보면 ‘택배 분류업무 명확화’를 논의 과제로 삼고 △분류업무 개념 규정 △택배기사 기본업무(집화 배송) 규정 및 분류업무 수행 시 대가 지급과 표준계약서 명시 △외국인 인력 투입 △정부 지원(택배터미널 용지 확보, 분류업무 자동화 설비 구축) 등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