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건설부문 계열사이자, 국내를 제외한 도급계약 수익 세계 순위 38위(2021년 기준) 업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기관투자자들은 외면한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의 아파트 붕괴 사고로 인한 건설업계에 대한 투자 심리 위축 △승계 작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구심 △LG엔솔 상장 일주일 후 청약이라는 타이밍 등이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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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의 첫날 수요예측에는 200여개 기관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날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지며 현대엔지니어링과 주관사는 긴급회의를 갖고 시기조율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LG엔솔이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2023대 1을, 주문규모는 1경5203조원을 기록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대어급 중 유일하게 흥행참패를 기록한 크래프톤(259960)의 경우 수요예측에 국내외 기관 621개사가 참여했다. 경쟁률은 245.15대 1이었다. 크래프톤은 수요예측 흥행 저조에도 공모가를 밴드 최상단에서 결정하고 일반청약에 나섰다가 일반청약에서도 7.79대 1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기관 수요예측이 공모주 흥행 시금석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무리한 일반청약은 기업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희망공모가는 5만7900~7만5700원이다. 삼성엔지니어링과 GS건설(006360), 대우건설(047040) 외에 외국 건설 상장사 9곳을 포함 총 12개사를 최종 비교회사로 선정, 비교가치 평가법(EV/EBITDA)을 적용했다. 여기에 고평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34.91~14.90%의 할인율을 반영했다. 공모금액은 9264억~1조2112억원, 공모 후 시가총액은 4조6293억~6조525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는 현대차그룹 건설사이자 건설 대장주로 꼽히는 현대건설(000720)(26일 종가기준 4조4876억원) 보다 높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면 건설 대장주가 바뀌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로 건설업계 전반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않을까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라한 성적에 일각에선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업계 분위기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높은 구주매출 비중 결국 독
현대엔지니어링은 그동안 건설업으로 성장해왔지만, IPO를 추진하며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이산화탄소 자원화 플랜트 건설과 운영, 폐기물 소각·매립장 운영, 차세대 소형 원자로 건설 등에 투자하겠다며 미래성장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업계 분위기도 긍정적이지 않다.
실제로 현대엔니지어링의 상장 배경으로 기업 승계 작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구심은 꾸준히 제기됐다. 기업의 IPO 주목적은 새로운 사업을 위한 투자금 유치에 있다. 그런데 현대엔지니어링이 투자금 마련을 위해 새로 찍어낸 신주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기존 주식을 가진 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IPO가 기존 주주의 배만 불리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구주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한 특수 관계인 5인이 매각한다. 주주별로 △정몽구 회장이 142만936주 △정의선 회장이 534만1962주 △현대글로비스가 201만3174주 △기아가 161만1964주 △현대모비스가 161만1964주를 각각 내놓을 예정이다. 정의선 회장이 전체 구주의 약 45%나 된다.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5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
이 자금은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012330)를 통해 기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그치고 있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추가 매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엔솔 상장 일주일 후 청약을 진행하는 점도 현대엔지니어링의 흥행 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LG엔솔이 상장 후에도 시중 자금을 당분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어로의 자금 이동이 쉽지 않은 것이다. IPO 업계 한 관계자는 “LG엔솔 상장 이후에도 증시 자금이 당분간 쏠릴 수 있을 것”이라며 “중대형 공모주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엔지니어링 입장에선 시기가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