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대표적인 제약사는 한미약품(128940)이다. 한미약품은 바이오의약품의 반감기를 늘리는 약효 지속 기술인 ‘랩스커버리’(LAPSCOVERY)를 보유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5조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당뇨병치료제에 적용된 기술이 바로 랩스커버리다. 단백질 의약품은 몸에 들어가면 혈액을 타고 돌면서 혈관상피세포에 흡수되거나 신장에서 걸러져 몸 밖으로 배출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그러면 약효가 빨리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랩스커버리는 유전자재조합으로 만든 단백질 전달체 기술이다. 이 전달체에 약효 단백질을 결합시키면 상피세포로 흡수되지 않고 크기가 커지는 효과로 신장에서 걸러지지 않는다. 회사 관계자는 “전달체에 어떤 약효 단백질을 붙이는지에 따라 종류가 늘어난다”며 “이를 적용하면 약 투여 회수를 줄여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투여량을 줄여 부작용 위험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비만·비알코올성지방간·당뇨병·고인슐린증 등 대사질환을 비롯해 항암치료 부작용인 호중구감소증, 희소질환인 뮤코다당증·성장호르몬 결핍증·단장증후군 등 12개 파이프라인을 가동 중이다.
한미약품은 이 외에도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인 ‘펜탐바디’(PENTAMBODY)를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한미약품 자회사인 북경한미가 자체 개발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 몸의 면역글로불린G(IgG)와 구조가 유사해 면역원성과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소개했다. 한미약품은 펜탐바디를 이용해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를 결합한 새로운 이중 항암제를 비롯해 자가면역질환치료제 등 4종의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기업 중에는 에이비엘바이오(298380)와 레고켐바이오(141080)가 대표적인 플랫폼 기술 보유기업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을, 레고켐바이오는 항체에 약물을 결합하는 ‘ADC’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항체는 병을 일으키는 항원에 대항하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자연적인 상황에서는 항체는 모두 특정 항원 하나에만 작용하는 단일항체다. 표적항암제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결합하는 특정항체를 인위적으로 배양해 만든 것이다. 이중항체는 이런 항체 두 개를 결합한 것이다. 항체 하나로 두 개의 항원을 공격할 수 있어 효과가 커진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단순히 두 개의 항체를 결합하는 게 아니라 결합했을 때 시너지가 나는 항체들을 묶는 게 경쟁력”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연구 중인 이중항체 플랫폼이 6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에이비엘바이오 파이프라인 중 퇴행성뇌질환 치료제 ‘ABL301’은 글로벌 제약사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약물이나 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한 뇌혈류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ABL301은 혈액 속 철분을 운반하는 단백질에 작용하는 항체와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알파-시누클린 단백질에 작용하는 항체를 결합했다. 그래서 BBB를 통과해 파킨슨병을 치료한다.
레고켐바이오는 항체에 화학약물을 결합하는 ‘ADC’ 분야에서 플랫폼 기술인 ‘ConjuALL’을 보유하고 있다. 항체의약품은 작용하는 단백질이 많아야 효과를 많이 낸다. 합성의약품은 암이 아닌 정상세포도 공격하는 한계가 있다. ADC 기술을 이용하면 유전자 돌연변이가 많지 않은 암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ADC 약은 항체와 약물을 결합하는 링커가 불안정해 이동 도중 링커가 깨지면 약 성분이 정상세포를 공격하게 된다. 또 항체와 약을 결합하는 위치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그래서 ADC에서는 약과 항체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느냐가 핵심기술이다. 레고켐바이오의 ConjuALL은 안정성 측면에서 우위가 있다는 평가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ConjuALL은 14일 정도까지 항체와 약을 안정적으로 결합한다”며 “또 약물을 항체의 특정 위치에 결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항체를 변형시켜 약을 결합하는 방법을 연구할 때 우리는 화학적인 방법으로 항체 변형을 최소화하면서 약을 연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부연했다. 레고켐바이오는 ConjuALL을 이용해 7종의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면 파이프라인 확장에 유리하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은 성공보다 실패가능성이 큰 만큼 항상 실패에 대비해야 한다”며 “플랫폼 기술은 초기단계부터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한두 개가 실패해도 이를 상쇄할 다른 물질을 연구하면 되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