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박정수 기자] 자금시장 경색을 풀기 위해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는 하락세를 보였지만 단기물 금리는 더 올랐다. 지난 주말 월가에서 미국 금리인상 속도조절 기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쓸만한 카드를 모두 동원한 시장안정책이 나온 것치고는 시장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는 분석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실제 정책이 시행되고 자금이 공급돼야 불안이 가라앉을 것으로 보고 있다.
24일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최종호가수익률을 보면 이날 채권금리는 국고채를 중심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3년 만기 국고채는 19bp(1bp=0.01%포인트) 하락했고 5년과 10년 만기도 14.7bp, 12.9bp 떨어졌다. 회사채 시장 구축효과를 불렀던 한전채의 경우 3년 만기 금리가 14.2bp 밀렸고 산금채 1년 만기 금리도 2.2% 떨어졌다.
회사채 금리도 3년 만기 AA-급과 BBB-급이 나란히 14.4bp, 14.6bp 하락했다. 같은 만기 국고채와의 금리차이인 신용스프래드는 지난 주말인 21일 연중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지만 이날 각각 128.7bp, 714.1bp로 축소됐다.
하지만 단기물의 사정은 달랐다. 91일 만기 기업어음(CP) 금리는 4.37%를 기록해 전 거래일 대비 12bp 올랐다. 오전만 해도 8bp 상승한 수준이었지만 오후 들어 더 상승폭을 키웠다.
발행시장에도 여전히 찬바람이 불었다. 이날 회사채 수요예측은 없었고 신용등급이 높은 공기업들이 줄줄이 채권발행에 나섰지만 전 거래일 민평(민간채권평가사) 금리 대비 높은 금리에 발행하거나 아예 유찰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입찰을 실시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채권은 신용도 ‘AAA’로 최상위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유찰됐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수원 입찰에서 호가는 들어왔지만 발행량을 채우지 못해 결국 전 트렌치애서 유찰을 결정했다”며 “11월에 다시 입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2년과 5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입찰을 실시한 결과 2년물 유찰을 결정했고, 인천도시공사도 3년 만기 녹색채권 발행을 시도했지만 포기했다.
어렵게 발행을 결정한 곳들은 금리를 더 얹어주기로 했다. 한국장학재단은 5년물 발행에 민평 대비 20bp 높은 금리에, 가스공사 5년 만기 채권은 43bp 높은 금리에 낙찰됐다. 주택금융공사도 2년 만기 1700억원 규모로 발행하기로 했지만 금리는 5.7%로 민평 금리 5.333%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인천도시공사 2년 만기 채권은 민평 대비 무려 120bp 높은 금리에 낙찰됐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채안펀드 가동을 시작했지만 시장 발행물을 50% 이하로 담으라는 조건이 있어서 발행시장 경색은 여전하다”며 “금융위기 당시 설계 취지는 유동성 지원인데 지금은 자금경색이라 이런 규제를 100%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책이 나와도 돈이 풀리지 않는 이상 영향이 없다”며 “시행이 너무 느린 느낌인데 돈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나서야 시장이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