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 자금에 부담을 느낀 김씨는 은행에 일단 이자만 갚고 원금 상환은 5년 뒤로 미루는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을 문의했다. 은행측은 바뀐 주택담보대출에 따라 비거치식·분할상환이 원칙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비거치식·분할상환 대출이라도 1년까지는 거치기간을 둘 수 있다는 은행측의 안내에 따라 김씨는 1년 뒤 원리금을 갚기로 하고 대출을 받았다.
내년 2월 서울·수도권을 시작으로 적용되는 새로운 주택담보대출의 핵심은 대출자의 소득심사 강화, 원리금 균등상환이다. 일부 예외사항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집을 살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땐 대출자의 소득수준을 이전보다 상세히 살피고 비거치식·분할상환 방식을 적용한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은행권에서 주택을 담보로 돈 빌리기는 한층 까다로워져 부동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특히 소득심사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집살 땐 분할상환·비거치식 원칙 적용
정부가 15일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은행들이 현장에서 참고하는 업무지침서 역할을 하게 된다. 가이드라인은 담보능력 심사 위주였던 기존 은행권 대출심사를 소득에 연계한 상환능력 심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조건은 대략 4가지다. △신규 주택구입용 대출 △고부담대출((LTV 또는 DTI 60% 초과) △주택담보대출 담보물건이 해당 건 포함 3건 이상 △소득산정 때 신고소득을 활용한 대출 등이다.
생활비 용도·소득 많으면 예외
다만 정부는 다양한 예외조항을 마련했다. 집을 담보로 단기 목적의 생활자금을 빌리거나 대출이 낀 집을 상속받은 경우다. 아파트 분양대출도 마찬가지다. LTV가 60%를 넘더라도 DTI가 30%를 밑돌면 만기일시상환 방식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소득이 많은 사람도 예외로 인정한 셈이다. 예컨대 5억원짜리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는다고 가정할때 연소득 5800만원 이상이면 DTI가 30%를 밑돌아 새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과거 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자가 거치기간 연장을 위해 새 대출로 갈아탈 때도 1회에 한해 거치기간을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2018년 12월 31일 이전에 같은 은행에서 같은 금액 이하의 대출상품으로 갈아타야 인정받을 수 있다. 윤성은 은행연합회 여신제도부장은 “거치식 대출받은 사람에게 바로 비거치식 대출을 적용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한시적으로 거치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가계부채 옥죄기 실효성 ‘글쎄’
정부는 이번 제도가 시행되면 연간 이뤄지는 신규 주택담보대출 126조원의 20% 수준인 연 25조원이 분할상환·고정금리 대출로 이뤄져 시간이 지날수록 부채가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전문가들도 일단 이번 대책에 대해 정부가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빠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행 예고까지 한 상황에서 더 미루다간 (가계부채 문제를)방관했다는 책임 소재가 불거질 수 있다”며 “객관적인 소득 증빙 자료를 통해 상환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집단대출 등 적용 예외 조항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대출심사가 느슨한 분양 중도금 집단대출은 최근 분양물량 급증과 함께 예년보다 3~4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며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담대의 상당 부분은 사실 서민들의 긴급생활자금용인데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기보다 부동산 경착륙을 우려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작 가계부채 문제의 뇌관이 주담대가 아닌 다른 부분의 대출에서 터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담보대출 보다는 오히려 신용대출이 더 문제”라며 “(신용대출의 경우) 금리 자체가 더 비은행권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우려한 것은 이해하지만 추이를 지켜본 뒤 분할상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며 “현재 대책으로 안심하기엔 충분치 않아 집단대출도 분할상환토록 하는 등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