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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56년간 3대(代)를 이어온 북한의 ‘병진노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병진노선은 김정은의 조부인 김일성 주석 체제 때인 1962년 12월 채택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이 그 시초다. 경제·국방 어느 하나도 약화시키지 않고 같은 비중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김일성은 ‘당료파’와 ‘군사파’를 두루 중용했다. 부친인 김정일은 ‘병진노선’을 유지하되, ‘선군정치’를 표방했다. 김일성 사망 이후 지속된 경제난과 사회주의 붕괴로 초래된 외교고립·안보위협을 정면 돌파하고자 ‘당료파’보다는 ‘군사파’에 힘을 실어줬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 ‘유훈정치’를 강조해오다, 2013년 3월 ‘항구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김일성의 ‘병진노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 조야에서 한글을 그대로 살린 ‘Byungjin policy’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잘 알려진 병진노선을 버린 건, 김정은이 북한을 국제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상국가’로 발돋움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먼저 나온다. 일각에선 스위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서방’을 목도했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김정은은 확실하게 보통국가의 ‘정상’이 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체제 유지를 위해선 핵 무력뿐만 아니라 경제부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다”고 했다.
김정은이 ‘경제 건설 총력 집중 노선’으로 방향을 튼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적 궁핍’이라는 현실론 때문으로 보인다. CNN방송에 따르면 북한문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 정부의 자료를 인용해 “북한과 중국 간 교역량이 급감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 교역은 아마도 1950년 한국전쟁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일 것”이라며 “북한의 호언장담에도, 북한은 자립하기 어렵다. 특히 음식과 연료, 기계 등의 분야가 그렇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은 우리로선 아쉬울 게 없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경제발전에 주력하게 되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로선 안보에 투자해야 할 비용을 복지나 일자리 등 필요한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어서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올해 1월 신년사를 계기로 예상을 뛰어넘는 ‘광폭 행보’를 펴고 있다. 김정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고, 실제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서울로 보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지난달엔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했다. ‘재팬 패싱’(일본 배제)을 우려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나서 “나도 만나자”고 한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은둔의 지도자’로 불렸던 김정은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과의 대화를 쥐락펴락 하는 ‘몸값 높은 지도자’가 된 셈이다.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늦어도 6월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이 예상치 못한 ‘파격’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 전 장관은 “김일성·김정일의 DNA를 가졌다면 마키아밸리가 군주론에서 얘기한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지(간사한 지혜)를 겸비했을 것”이라며 “결정적 순간에는 얼마든지 목표 달성을 위해 변신하고 굽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