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바쁜 도시바 "반도체 매각, 논쟁 소지 없애고 이달 완료"(종합)

발목잡던 협력사 美WD 지분 뺀 채 매각 절차 강행
美WD "여전히 우리 이익 침해…국제제소 이어갈것"
도시바메모리 인수 '4+1파전' 양상 한층 복잡해져
  • 등록 2017-06-01 오후 5:01:45

    수정 2017-06-01 오후 5:19:46

/AFP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회사 정상화까지 갈 길이 바쁜 일본 도시바(東芝)가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위해 특단의 방법을 꺼내들었다. 가능하다면 이달 중 4곳의 후보 중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게 도시바의 목표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얽히고 섥힌 인수전 양상이 한층 복잡해졌다.

도시바가 지난달 31일 미국 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WD)과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일본 욧카이치시(四日市) 플래시 메모리 공장의 보유 지분을 '도시바메모리'에서 '도시바'로 옮겼다고 1일 일본경제신문(닛케이), 아사히신문 등이 보도했다. WD가 지분 협력 관계를 이유로 타 기업으로의 매각을 반대해 오고 있는 만큼 갈등의 원천을 빼고 인수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갈등 '원천' 제거 후 매각 강행 계획

도시바가 욧카이치 공장의 보유 지분을 '도시바메모리'에서 '도시바'로 옮긴 건 욧카이치 공장이 매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올 초 경영 정상화 자금을 마련하고자 낸드 플래시 부문 세계 2위인 반도체 부문을 따로 떼어내 매각기로 하고 올 4월 전 반도체 사업부문을 '도시바메모리'로 분사했다. 시장 영향력과 수익성, 잠재력을 두루 갖춘 회사인만큼 시장의 관심은 뜨거웠다. 1차 입찰 땐 10여 곳이, 2차 입찰 때도 4곳이 참여했다. 15조~20조원으로 예상됐던 매각액도 30조원에 달하는 입찰 기업이 등장할 만큼 달아올랐다.

그러나 미국 반도체 회사 WD가 지난달 법적 문제를 제기하면서 순조로운 듯했던 인수 절차에 급제동이 걸렸다. WD는 도시바가 욧카이치시 공장을 합작법인(조인트벤처·JV) 형태로 함께 운영하는 자신의 승인 없이 매각을 추진하는 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지난달 15일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했다. 양측 최고경영자(CEO)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 차례 만남을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도시바측은 WD와 정식으로 JV 협상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도시바는 원래 샌디스크와 욧카이치시 공장 JV를 운영했다. WD가 지난해 샌디스크를 인수하면서 사실상 새로운 도시바의 파트너가 됐으나 아직 양사가 따로 계약한 건 없다. 양사 계약관계는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바에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법적 결과를 기다리고 다시 매각 절차를 추진하려면 1년 이상이 걸릴 수있다는 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의 분석이다. 그러나 도시바가 7조원이 넘는 미국 원전사업 손실을 메우고 정상화하려면 당장 현금이 절실한 상태다. 도시바는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빠진데다 회계법인의 반대로 지난 회계년도(2016년 4월~2017년 3월) 결산 감사도 받지 못했다. 채권 은행도 올초부터 동요하고 있다. 이대로면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폐지도 불가피하다. 도시바 회생 계획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FT는 "2018년 3월까지 반도체 매각을 마무리짓고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상폐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도시바가 이달 중순까지 매각대상을 결정하고 이를 오는 28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설명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도 도시바 매각 건을 잘 아는 관계자를 인용해 도시바가 한 달 이내에 매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 /AFP
◇성사 여부 불투명…얽히고 섥힌 난전

문제는 이 계획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당장 WD이 반발하고 나섰다. WD는 도시바의 결정이 알려진 직후 "도시바는 아직 (욧카이치시 공장을 운영하는) JV 협상 위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제소를 철회하지 않고 우리의 권리를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도시바가 JV 인수 계획을 철회한 건 우리의 지금까지 주장을 인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시바와 WD는 법적 분쟁과 함께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개별 협상도 이어갈 계획이지만 이견을 좁히기는 더 어려워졌다.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려는 다른 후보군도 전략을 세우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당장 입찰 금액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당장의 인수 대상에서 제외되는 욧카이치시 공장은 일본 낸드플래시 생산의 17%를 담당하고 있다. 생산 능력만 고려해도 인수 대상이 5분의 1 가까이 줄어드는 셈이다. 도시바는 도시바메모리 인수 기업에 욧카이치시 공장 지분을 차후 추가로 매각할 수 있다는 안을 제시할 계획이지만 WD가 이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한편 지난달 19일 마감한 2차 입찰에 참여한 곳은 현재 네 곳이다. △미국 헤지펀드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000660) 연합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 △미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 △타이완 훙하이정밀공업(鴻海·폭스콘)이다. 여기에 아시아 경쟁기업에 기술을 내주기 꺼려하는 일본 정부의 의향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NHK는 "일본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은 KKR과 손잡고 일본 기업을 더 끌어들여 '미일연합'을 구성해 인수에 나서려 하지만 일본 기업의 참가가 없어 계획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 정부는 그 대안으로 도시바와 갈등 중인 WD과 손잡는 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WD이 주도권을 잡으려는 통에 협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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