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들은 간담회에서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을 위한 노력을 소개하고 정부 방향에 공감한다는 정도의 의사를 표할 것으로 보인다. 진솔한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청와대 바람과는 달리, 기업들이 어려운 경영 여건과 애로 사항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26일 오전까지만 해도 정몽구 회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대한상공회의소에 통보했는데 오후 들어 참석자를 정의선 부회장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대한상의가 언론사에 참석자 명단을 수정 공지하는 등 약간의 혼선을 빚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간담회 일정을 발표한 뒤 정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중 누가 참석할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검토했다. 대통령과의 첫 공식 만남이고 다른 그룹도 대부분 총수가 참석한다는 점을 고려해 정 회장이 직접 참석하는 것으로 추진했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이 23일 인도 시장 점검차 출장을 떠나 일정 조율이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호프 미팅 형식으로 진행되는 점을 감안할 때 고령인 정 회장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문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에도 정 회장이 고령인 점 등을 고려해 정의선 부회장이 동행했다. 지난해 말 정 회장이 국회 청문회 출석 당시 건강에 대한 우려로 구급차가 국회 의사당 근처에 대기하기도 했다.
재판중인 신동빈· 제주에 있는 허창수도 참석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 4명의 대기업 총수는 간담회에 직접 참석하기로 했다. 중견기업으로 유일하게 초청장을 받은 오뚜기도 총수인 함영준 회장이 참석한다.
특히 신동빈 회장의 경우 27~28일 양일에 걸쳐 재판 일정이 있지만, 간담회 참석을 위해 재판부에 일정 조율을 건의할 만큼 간담회 참석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이) 문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입장은 정해졌지만, 결정은 재판부의 몫”이라며 “재판시간 변경과 연기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재판부가 일정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롯데에서는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사장)이 대신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에서는 구본준 ㈜LG 부회장이 참석한다. 구 부회장은 LG그룹 총수는 아니지만, 그룹 경영 전반을 챙기고 대외 활동에도 전면에 나서는 등 구본무 LG그룹 회장 역할의 일부를 대신하고 있다. 구 회장이 여전히 ㈜LG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으로서 중요 사업 현안을 챙기고는 있지만, 사업 전반에 걸친 경영 활동은 구 부회장이 도맡아 할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26일부터 나흘간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리는 ‘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과 일정이 겹쳤지만, 일정을 조율해 간담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CJ그룹에서는 총수인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이 참석한다. 손 회장은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경영하는 등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 대면하는 총수들, 무슨 대화 나눌까
청와대는 시간에 쫓기는 오찬 대신 만찬으로 하고, 이틀에 나눠 여는 등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지도록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기대만큼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상당수 기업이 각종 특혜·로비 의혹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내린 터라, 허심탄회하게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털어놓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번 간담회의 주제가 원칙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으로 정해진 만큼, 기업들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그간 해왔던 노력을 소개하고 채용을 확대해 정부 정책 기조에 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기보단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 유연성 제고, 미국· 중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박 등 산업계 공통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전하는 수준에서 대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대통령과 총수들이 만나 내실 있는 대화가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총수들이 속내를 털어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