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서산에서 팬션을 운영하는 김모(70)씨는 지난해 12월 한통의 대출권유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한 시중은행 대리라고 소개한 직원은 “인지대로 2000만원을 입금하면 대출 승인을 낸 후 3시간 내에 인지대를 환급해 주겠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확인차원에서 이 은행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전화를 걸었던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솔깃한 제안에 혹시나 했던 김씨는 이내 의심을 거뒀다. 그러나 김씨가 통화 중에 통장 개설에 필요하다며 설치한 애플리케이션(앱)이 화근이었다. 이 앱이 스마트폰을 해킹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만든 위장 콜센터로 전화를 연결한 것이다. 김씨는 직원이 알려준 계좌로 2000만원을 송금했고 그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
지난해 보이스피싱 발생건수가 한 해전보다 4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피해액은 무려 68.3%나 급증했다. 경찰·검찰·금감원 직원을 사칭하거나 저리 대출로 유혹하는 등 범죄 수법이 다양해진데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각심이 낮은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이 성별·연령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점을 기억하고 범죄수법이나 예방법 등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건수는 2만 4259건을 기록했다. 한 해 전(1만 7040건)과 비교해 42.4%(7219건) 증가한 수치다. 피해건수가 큰 폭으로 뛰면서 피해액도 같은 기간 1468억원에서 2470억원으로 68.3%(1002억) 급증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67건의 보이스피싱이 경찰에 접수됐으며 6억 7000만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대출사기형 사칭 대상은 캐피탈이 3017건(3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시중은행 2555건(28.2%) △저축은행 1901건(21%) △특수은행 819건(9%) △대부업체 269건(3%)이 뒤를 이었다. 피해자는 40~50대 남성이 37%로 가장 많았고 현재 이용하는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겠다는 ‘대환대출’ 수법(66%)이 가장 흔한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나타났다.
|
보이스피싱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도 원인으로 꼽혔다. 경찰청이 올해 3월 국민 1000명으로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기관 사칭형’ 피해가 집중된 20~30대 여성과 ‘대출 사기형’ 대표 피해 연령대인 40~50대 남성 모두 자신들이 피해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반면 두 연령층이 주된 피해자라고 지목한 60대 여성은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3.8%에 불과해 인식과 현실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명심·관심·의심’ 세 가지를 강조했다. 누구나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범죄수법이나 예방방법 등에 관심을 두는 한편 금융·사정기관에서 금전 거래를 요구하는 경우를 의심하라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이나 지인도 보이스피싱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이 아닌 나의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모르는 상대방이 보낸 문자 메시지나 링크를 확인하면 악성 프로그램에 접속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