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상무부를 이끌 하워드 러트닉(63) 캔터 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성명서에서 밝힌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에 관세부과를 비롯해 수출 통제, 심지어 무역협상까지 총괄하며 트럼프의 핵심 공약인 ‘무역전쟁’을 치를 ‘야전 사령관’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뜻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러트닉 지명자를 앞세워 온갖 ‘무역 툴’을 동시다발적으로 활용해 단번에 ‘무역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
러트닉 지명자는 1983년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에 입사해 29살 때인 1990년대 초반 회장 겸 CEO에 오른 월가에서 신화 같은 인물이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2001년 9·11테러로 캔터 피츠제럴드 뉴욕사무소 직원의 약 70%인 658명을 잃었다. 당시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타워의 북쪽건물 101~105층에 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회사 재건에 성공해 2000명 수준이던 직원 수를 1만3000명으로 늘렸다.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억만장자 금융 자산가인 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거액 선거자금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트럼프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현재 그는 정권인수팀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트럼프 2기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등을 도울 정도로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가 수장이 될 상무부는 산업지원과 경제안보를 총괄하는 부처다. 트럼프 1기 때는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1962년에 만든 해묵은 법령을 끄집어내 철강, 알루미늄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강력한 조사를 진행했다. 윌버 로스 당시 상무부 장관은 이들 수입품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뒤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보고서를 올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량 제한, 고율 관세부과(철강 25%, 알루미늄 10%) 등 조치를 내렸다. 중국의 핵심 기술 통제 카드도 꺼냈다.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를 거래제한리스트(Entity list)에 추가해 미국 기업이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을 차단하면서 ‘화웨이의 기술 굴기’를 막았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
트럼프 2기에서 상무부는 여기에 더해 무역협상 권한까지 갖게 될 전망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총괄하는 조직은 USTR인데, 트럼프 당선인이 러트닉 지명자에게 USTR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까지도 부여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에서는 ‘무역 차르’라고 불렸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당시 USTR 대표가 한미FTA 개정을 비롯해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를 신설하는 데 진두지휘했는데, 2기에선 러트닉 상무부장관 지명자에게 이 권한까지 부여한 것이다. 러트닉 지명자는 이 같은 무역확장법 232조의 조사·수출통제·무역협상 등 무역카드를 활용해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와 무역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USTR 수장은 중량감이 큰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보다는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제이미슨 그리어가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러트닉 지명은 트럼프 2기에서 무역적자 해소와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예산과 경제안보 조사, 수출규제 권한을 모두 보유한 상무부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며 “USTR 기능까지 총괄하면서 관세부과, 이를 지렛대 삼은 무역협상, 그리고 대중국 수출 통제까지 통합적으로 조율해 무역전쟁으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철강 232조’(수입산 철강제품에 고강도 관세 부과 및 물량 제한) 조치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232조’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여 전 본부장은 “트럼프 1기 당시 자동차에도 25% 관세를 부과하려고 했지만 국가안보에 오히려 해롭다는 이유로 결국 흐지부지됐다”면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자동차 견제 등을 위해 자동차232조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