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주 급등은 ‘나스닥의 고래’라는 별명을 얻은 소프트뱅크의 콜옵션 매수 베팅과 ‘로빈후더’로 불리는 2030 미국 개인투자자의 과감함이 견인했다. 사실상 ‘투전판’에 가까울 만큼 거래가 위험하다는 경고는 계속됐지만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그래서 추후 낙폭은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루 21% 빠진 테슬라 ‘최악의 날’
8일(현지시간) 오전 9시45분께. 월요일 미국 노동절을 하루 건너뛰고 화요일 열린 뉴욕증권거래소는 개장하자마자 긴장감이 가득했다. 지난주 2거래일 연속 갑작스러운 하락이 이어질지, 아니면 멈춰설 지를 결정할 갈림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대표 기술주 테슬라는 장이 열리자마자 20% 가까이 폭락했고, 공황성 투매 속에 결국 전거래일 대비 21.06% 마감한 330.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CNN은 “테슬라가 2010년 나스닥 상장 이후 역대 최악의 날을 보냈다”고 했다. 이번 달 들어 5거래일간 하락폭은 33.74%에 달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다. 현재 테슬라 주가는 월가의 시선보다 높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37명의 애널리스트에게 물은 결과 테슬라의 목표주가 컨센서스는 284.90달러였다. 그보다 더 낮게 본 전문가들도 많았다. 아직도 더 떨어질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그 여파로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6대 IT 공룡의 시총은 3거래일간 1조달러 이상 허공으로 날아갔다. 재러드 와이스펠드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는 “지난 3거래일 애플의 시총 손실액(3250억달러)은 애플의 내년 예상 매출액과 맞먹는 규모”라고 했다.
당장 증시 전반이 충격을 받았다. 이날 나스닥 지수는 4.11% 내린 1만847.69에 거래를 마쳤다. 3거래일째 하락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도 각각 2.78%, 2.25% 내렸다.
기술주가 떨어질 때 누군가 이를 메워준다면 충격이 덜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상승 조짐을 보였던 금융주는 이날 덩달아 폭락했다. JP모건체이스(-3.48%), 뱅크오브아메리카(-3.99%), 골드만삭스(-4.01%), 모건스탠리(-4.82%), 웰스파고(-3.31%) 등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며 반도체주 역시 타격을 받았다. 엔비디아와 인텔 주가는 이날 각각 5.62%, 2.34% 내렸다. 뉴욕 증시가 종목을 가리지 않고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
옵션거래에 나선 건 소프트뱅크만이 아니다. 수수료 없는 온라인 주식 중개 플랫폼 로빈후드를 이용하는 젊은 투자자인 ‘로빈후더’도 주가가 추후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확신 속에 옵션 시장에 합류했다. 미국 주식에 연동한 콜옵션 매수 잔액이 올해 6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게 그 방증이다. 이들은 최근 조정장에도 여전히 ‘매수’를 외치고 있다. 자칭 ‘베어마켓 로빈후더’라는 잭손씨는 지난주 테슬라 주가 폭락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은 바닥”이라며 “일생에 있어 투자를 위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썼다. 이들은 기관투자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만큼 추후 조정장의 충격파는 이전에 비해 더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S&P 500 지수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의 동반 상승을 주목하며 “위험 신호”라고 진단한 것은 급격하게 치솟은 옵션 거래와 무관하지 않다. 위험한 파생거래가 늘수록 주가 변동성은 커지고, 이는 곧 거품 붕괴의 골이 예상보다 깊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로키 피시맨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S&P 지수와 VIX 지수가 동반 상승한 건 (닷컴 버블 때인) 2000년 3월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경제 펀더멘털이 가라앉는 와중에 단기 폭등한 기술주가 흔들리면 닷컴 버블과 같은 테크 버블이 올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베어드의 브루스 비틀 수석전략가는 “대형주의 밸류에이션은 역사적인 수준보다 훨씬 높았다”며 “사상 최대 수준의 콜옵션 거래량, 월가의 강세 전망 수준 등 기술적인 지표들을 보면 시장의 낙관론은 너무 과도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