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뮤지컬배우 조정은(45)의 별명은 ‘선녀’다. 2010년 출연한 뮤지컬 ‘피맛골 연가’에서 입은 선녀 의상이 잘 어울려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조정은의 무대를 보면 이 별명을 수긍할 것이다. 조정은은 어떤 작품이든 특유의 단아하면서도 강직한 모습으로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아왔다. 이토록 매력적인 배우를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뮤지컬이 가진 특권이다.
|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 역을 맡은 배우 조정은. (사진=레미제라블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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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통해 조정은의 매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조정은이 맡은 역할은 판틴. 딸 코제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레미제라블’을 대표하는 넘버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의 주인공이다. 180분에 달하는 전체 공연 중 판틴의 등장 분량은 15~20분에 불과하다. 조정은은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을 열연하고 있다.
최근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조정은은 “판틴 역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판틴의 기승전결을 보여주기 위해 매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틴은 순수한 인물이에요.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의 가사를 보면 자신을 떠난 남자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런 끔찍한 현실에도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판틴의 순수함이죠. ‘레미제라블’은 이런 순수함도 처참히 짓밟히는 것이 세상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매년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보니 이번 공연이 제가 판틴을 연기하는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해요.”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레미제라블’은 뮤지컬배우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작품이다. 조정은 또한 계원예고 재학 시절인 1996년 해외 팀의 내한공연으로 ‘레미제라블’을 접했고, 서울예술단 입단 오디션에선 에포닌의 넘버 ‘온 마이 오운’(On My Own)을 불렀다. ‘레미제라블’에서 하고 싶었던 역할은 처음엔 에포닌이었다. 조정은은 “초연 때는 작품을 제대로 맛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저도 배우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판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며 “판틴의 출렁이는 감정을 음악과 함께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 역을 맡은 배우 조정은의 공연 장면. (사진=레미제라블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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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의 실력은 지금까지 단 세 번 성사된 ‘레미제라블’ 한국어 공연에서 모두 판틴 역을 맡았다는 점이 증명한다. 세계적인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의 대표작인 ‘레미제라블’은 현지 프로덕션 팀이 직접 참여하는 매우 엄격한 오디션으로 유명하다. 2012년 한국어 초연, 2015년 재연에 이어 8년 만에 돌아온 이번 공연까지 모두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조정은과 자베르 역 김우형이 유일하다.
어릴 때부터 연기가 좋았던 조정은은 계원예고 재학 시절 수업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한 뒤 뮤지컬배우의 꿈을 키웠다. “음악을 통해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면서 서울예술단에 입단해 2001년 앙상블로 뮤지컬배우로 정식 데뷔했다. ‘드라큘라’의 미나,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 등으로 뮤지컬계 대표 여성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이한다. 조정은에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배우 김혜자를 언급했다. “김혜자의 연기는 물론 직접 쓴 책도 좋아한다”는 조정은에게 김혜자는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존재다. 조정은은 “관객이 저를 볼 때도 마음과 기분이 전환되면 좋겠다”라며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 역을 맡은 배우 조정은의 공연 장면. (사진=레미제라블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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