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2025학년도부터 의대증원을 추진 중인 정부가 발표시기를 결국 또 연기했다. 의료계의 반발에 조사해놓고도 발표를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관련 브리핑을 이번 주중에 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16일 오후 이번 주에 발표계획이 없다고 알렸다. 지난 13일 발표 연기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구체적인 발표시기에 대해 복지부는 “아직 확인 및 정리가 되지 않았다. 추후 알리겠다”이라고 설명했다.
|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복지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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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와 교육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0일까지 전국 40개 의대로부터 희망 증원 규모를 제출받았다. 대학들이 요구한 총 의대 증원 규모는 2800명 안팎으로 기존 정원의 0.6~2.6배를 희망 정원으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니 의대로 불리는 정원 40명 정도의 대학은 100여명의 정원도 수용 가능하다고 답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의대정원을 1500명 더 늘려 연 4558명씩 뽑아도 2035년 국내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분의 2수준에 그친다. 이를 모두 감안하면 정부는 1000~3000명 정도의 증원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의료계가 반발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서울시의사회가 회원 797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7%(6125명)가 의대 정원 확대 자체를 반대했다. 직역별로 살펴보면 ‘필수 의료 대책 조건을 선결 과제로 두더라도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는 의견은 △인턴·레지던트 92% △기타 81% △봉직의 84% △개원의 75% △교수 70% 순으로 많았다.
|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열린 17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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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증원 반대로 입장을 정한 대한의사협회는 2기 협상단을 다시 꾸려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대표를 맡은 양동호 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지난 15일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정부의 수요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며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하면 의료계도 지난 2020년 이상의 강경 투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경기도의사회도 소속 회원 100여명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대증원 반대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경기도 지역 총파업 투쟁’까지 거론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런 의사들의 반대 상황 속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부 여당은 표심에 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의사들의 눈치만 보다 의대증원 계획도 내년 총선 이후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한 병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하기로 한 건 해야 뭔가 일이 추진될 텐데, 이렇게 미뤄지다간 추진 동력마저 잃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