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년희망펀드 '전시행정'의 덫 벗어나야

  • 등록 2015-11-19 오후 4:04:02

    수정 2015-11-20 오전 8:21:19

[이데일리 유근일 기자] 청년희망펀드 기부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선 뒤 기업 총수 뿐 아니라 8만여명이 넘는 국민이 기부금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현재까지 모인 금액만도 823억원에 달한다.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이미 모집 과정부터 정부가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모금액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집 과정부터 잡음이 일다 보니 정부와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을 별도의 재단을 만들어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우려도 크다.

청년희망펀드를 둘러싼 다양한 우려와 관심은 자연스런 결과다. 정부 예산이 아닌 각계각층의 기부금으로 재단을 조성한 것도 결국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해달라는 의미다. 청년희망펀드가 장기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앞선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은 정부 주도 민간재단의 명암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목표로 만들어진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은 출범 당시와는 달리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핵심 사업이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끊임없는 논란 속에 있다. 재단 설립 근거와 재원 마련 근거를 담은 별도의 법까지 제정해 가며 열심히 ‘동반성장’을 외쳤지만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의 위상은 급격히 쪼그라 들었다.

반면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은 창업생태계 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금융권 유력 인사가 내려올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외부에서 인력을 대거 수혈했다. 초기 디캠프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관여했던 설립 멤버들도 여전히 창업생태계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디캠프는 이미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성지(聖地)가 됐다. 국책·시중은행의 팔을 비틀어 창업을 지원한다는 당초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청년희망펀드가 ‘전시행정’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청년희망재단도 하루빨리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낙하산 공무원’들이 발 붙이는 곳이 아닌 청년들이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길 바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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