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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작년 7월 31일 출범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9개월 동안 진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최종결과를 8일 발표했다. 진상 규명 조사는 끝났지만 관계자에 대한 법적 처벌과 제도개선 등의 과제가 남아 있어 당분간 여파가 이어질 전망이다.
◇책임규명 권고안 빠르면 이달 말 발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총 9건의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바탕으로 총 9273개(단체 342개·개인 8931명, 중복 제외) 명단이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청와대·국정원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및 소속 기관에서 이들 단체와 개인에 대한 사찰·검열·배제 등을 진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에 대한 수사 의뢰 및 징계 등의 책임규명을 권고할 계획이다. 국가가 권력을 남용해 문화예술인을 차별하고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한 만큼 관련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책임규명 권고는 크게 형사고발 등의 수사 의뢰와 자체 징계 두 가지로 나눠 진행한다.
책임규명 권고안은 아직 남아 있는 조사 결과에 대한 정리가 모두 마무리된 뒤 이르면 5월 말 또는 6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문체부가 이를 검토해 수사 의뢰 또는 징계절차에 착수한다. 그러나 법적 강제권은 갖지 않는다. 김영산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출범 이후 중간조사 발표를 바탕으로 관계자를 징계한 사례는 없었다”며 “최종 진상규명안을 받은 뒤 감사나 징계 등의 향후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국가예술위원회 설립…제도개선 ‘난항’ 가능성도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해 마련한 제도개선 권고안도 진통이 예상된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법제도 및 문화행정과 6개 주요 문화예술 지원기관(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한국예술인복지재단·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대해 각각 블랙리스트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개선안을 마련해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제도개선 권고안은 책임규명 권고안과 마찬가지로 법적 강제권을 갖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실제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활동 종료 후에도 제도개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이행협치추진단’ 설치와 상시 기구인 ‘문화예술인 표현의 자유와 권리 보장 위원회’(가칭) 설립을 함께 권고할 계획이다.
신학철 공동위원장은 “시간과 예산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각 위원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제도개선 권고안이 잘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원재 제도개선 소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6월로 예정된 모든 임기가 끝나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없지만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금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오는 6월까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백서 작성 작업을 한 뒤 모든 활동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백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활동보고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종합보고서’ ‘블랙리스트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종합보고서’ ‘블랙리스트 사태의 총제적 조망’(가제) 등 총 4권과 2권의 자료집으로 구성해 7월 중 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