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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정부에 반대하는 예술가에게 자기 돈으로 예술을 하라는 것에 어떻게 배제냐. 영혼을 찾으려면 왜 공무원이 됐나.”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박근혜 정부가 진행한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 진행 과정에서 당시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일하던 한 공무원이 블랙리스트 적용 지시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상부로부터 들었다는 말이다. 이 공무원은 이후 2주 만에 자리에서 밀려난 것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10일 진상조사위가 공개한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 관련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 공무원들은 블랙리스트 지시를 죄의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용했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를 통한 검열이 범죄라는 의식 없이 특정 작품을 지정해 ‘위험하다’ ‘배제해야 한다’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 박근혜 정부에서의 블랙리스트 문제가 공공기관에서 예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물론 최소한의 법적 장치도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서 적용되고 실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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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명단은 A4 용지로 60장 분량의 문건으로 출력돼 일일이 명단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 적용에 활용됐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당시 문체부 예술정책과에서 일하던 오 모 사무관이 리스트 관리 담당자였다. 오 사무관은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영상콘텐츠산업과·국제문화과·지역전통문화과·공연전통예술과 등 문체부 각 부서에서 지원사업 진행할 때마다 이 명단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시국선언 명단이 단순 명단이 아니라 실제 블랙리스트로 실행됐다고도 진술했다.
오 사무관으로부터 명단을 받아 적용했다는 관계자 진술도 확보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2015년 4월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일하던 A씨는 박 모 해외문화홍보기획관으로부터 오 사무관에게서 명단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는 오 사무관에게 받은 명단이 세월호 관련 명단과 박원순 및 문재인 지지자 명단임을 확인하고 그 정체를 물었다. 이에 오 사무관은 “정부 지원명단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A씨가 받아온 명단에 대해 “이 리스트를 적용 안한다고 해도 누가 알겠느냐”고 하자 당시 이 모 프랑스한국문화원장으로부터 “이곳(프랑스)에도 국정원 직원이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 중 영화분야 사업으로 프랑스에서 2015년 9월에 진행한 ‘포럼 데 지마주’에서는 ‘변호인’ ‘그때 그 사람들’ 등 5편의 영화가 상영되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현지 프로그래머들이 이들 작품의 상영 배제에 반발하자 최 모 예술감독이 직접 이들을 만나 상영 배제를 설득했다고 진상조사위는 밝혔다
지난해 7월 31일 출범한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문체부 공무원을 비롯한 현장 공무원들도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 4월 말까지 조사를 마무리한 뒤 5월 중 형사처벌을 비롯한 권고 사항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대변인은 “현재까지 블랙리스트 관련 범죄자 처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상위자에 대해서만 이뤄졌다”며 “공무원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를 통해 정확히 사실 확인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과 처벌을 권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