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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과시하지 않고 부드럽게 다른 의견을 포용하면서도 힘 있게 정책을 펴는 메르켈의 ‘무티’(Mutti·엄마)리더십’에 유권자들은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
메르켈이 독일 국민의 성원을 등에 업고 4연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치권에서는 지금과 같은 인기도라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입을 모은다.
10년 세월도 무색…4연임에 도전장
메르켈은 20일(현지시간) 밤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당수로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기민당) 지도부 모임 결과 내년 9월 총선에서 총리직 4연임을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수개월 전부터 도전 여부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때가 되면 밝히겠다’라며 답을 피했던 터라 이번 선언은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 아래 나온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포퓰리즘과 신(新)고립주의 가속화, 난민 위기와 긴축 경제에 얽힌 유럽의 우경화, ‘서구민주주의 최후 보루’라는 메르켈의 위상, 임기 말에도 여전히 인기가 높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공개 지지 등이 4연임의 결정을 이끈 배경으로 풀이된다.
메르켈은 “세계는 지금 매우 힘들고 불확실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 나의 모든 경험과 재능을 독일 섬기기에 쏟아부어야 한다”며 연임 도전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난민 위기, 시리아 내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 등을 예로 들며 “내년 9월 총선는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독일사회의 통합과 증오심 차단을 주요 과제로 소개하고 민주주의, 자유, 인간 존엄성 존중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신기록 세우는 메르켈…‘통일 총리’ 콜 넘보나
메르켈은 동서독 통일 이전에 동독에서 자란 첫 총리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54년 7월 서독의 물자 교류 중심지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개신교 목사이던 부친의 선교 목적 때문에 동독으로 옮겨 35년 동안 살았다. 그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정치에 발을 들인 후 초고속 성장 가도를 달렸다. 동독 정당 ‘민주약진(또는 민주출발)’ 대변인과 동독 마지막 정부 부대변인을 거쳐 1990년 독일이 하나가 된 후 통독 연방하원으로 입성한다. 당시 기민당 당수였던 콜 총리가 한 기자 소개로 메르켈을 알게 된 후 메르켈을 낙점하고 내각에 발탁했다. 메르켈에게 ‘콜의 양녀’라는 별칭이 따랐던 이유다. 그는 통일 독일 첫 내각에서 만 36세 나이로 여성청년부 장관을 맡았다. 1991년 기민당 부대표에 이어 1993년 기민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후 2000년 4월 기민당 당수직을 꿰찬 후 2005년 전후 세대 첫 여성총리에 올랐다.
지지율 여전히 높아…‘무티 리더십’ 진가 발휘
그는 이미 3차례나 연임했지만 4연임도 헛된 꿈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난민 위기 문제로 인기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독일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독일내 일요신문 빌트암존탁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메르켈이 4선 총리직을 수행하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 지난 8월 (42%)보다 13% 포인트가 더 늘어난 것이다. 이에 맞서 사민당은 좌파당, 녹색당 등과 함께하는 좌파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이들 3당의 합산 지지율이 50%가 안 되기 때문에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메르켈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무티 리더십’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엄마처럼 원칙을 고수하면서 따뜻함을 잊지 않는 배려와 포용이 특징이다. 여기에 신중함과 안정감이 가미된 실용주의도 메르켈 리더십의 또 다른 장점이다.
토마스 스트로블 기민당 대변인은 “메르켈은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존재”라며 “기민당 소속이지만 진보 사민당 정책을 적극 받아들였으며 사회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소통을 중시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