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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가의 여부는 M&A(인수합병)에서도 성패를 가릅니다.”
지난해 11월 초,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한진해운의 계열사로 미국 서해안의 핵심항만거점인 롱비치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는 TTI(Total Terminals International) 지분 54%의 인수 후보로 현대상선과 대한해운 2개사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한진해운이 혹독한 해운업 침체를 견디지 못해 사실상 파산 선고를 받으면서 알짜 자산인 TTI가 법원 매물로 나왔고, 그러자 국내 유력 해운사인 현대상선과 대한해운이 ‘OK목장의 결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현대상선측 법률 자문에 나선 조성민(39)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긴장했다. 대한해운의 모기업인 삼라마이다스그룹의 우오현 회장이 ‘M&A 귀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 회장은 1988년 삼라건설을 창업한 이래 우방산업(2004), 경남모직(2005), 동국무역(2008) 등 적자 기업을 인수합병해 알짜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보여왔다. 대한해운도 그가 2013년 9월 법정관리 상태에서 매입해 흑자 전환시켰다. 기업 회생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법원이 대한해운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았다.
이때 그가 주목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현대상선의 강점이었다.
“현대상선은 40년 이상 컨테이너 운송 사업을 영위하면서 컨테이너에 관한 한 세계적 수준의 노하우와 평판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벌크선을 주력 사업으로 해온 대한해운과 차별화됐지요. 그런데 한진해운과 그 계열사 TTI가 바로 컨테이너 전문이었습니다.”
이 결과 조 변호사는 ‘컨테이너 기반의 회사는 컨테이너를 잘 아는 회사가 인수해야 효과적’이라는 논리를 수립하고 여기에 맞는 딜 구조를 짰다”고 회고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1월 이사회를 열어 TTI 지분 20%와 터미널 내 현지 장비 리스업체 HTEC 지분 20%를 총 1560만달러(약 18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한진해운이 보유 중이던 TTI 지분 54%를 글로벌 2위 선사이자 2대주주(지분율 46%)인 스위스 MSC가 34%, 현대상선이 20%씩 나눠 갖는 구조였다. 이어 현대상선은 한진퍼시픽(일본 도쿄·대만 카오슝 터미널) 지분 100%,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TTIA) 지분 100%까지 연이어 인수했다. 잇따른 해외 터미널 확보로 터미널 이용료 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M&A 변호사는 고객의 모든 니즈를 만족시켜야 하기에 ‘일시적 노예’(Temporary slave)’로까지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새롭고 도전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적 열정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매력입니다. 두가지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고 M&A 변호사의 길을 걸을 것인지를 결정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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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생.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2002년 제 4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5년 사법연수원을 수료(34기)하고 해군법무관으로 전역한 2008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근무 중이다. 지난해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 시험에도 합격했다. 대표 실적으로는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미국 터미널 운영사(TTI) 지분 인수(2017), 한미사이언스의 JVM 인수(2016), 웅진홀딩스의 웅진케미칼 주식 매각(2014), 삼성전자·도시바 합작자회사 TSST 주식 매각(2014),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영업양수(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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