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최악의 자금난에 빠진 일본 굴지의 기업 도시바(東芝)가 사실상 상장폐지 절차에 접어들었다. 142년 기업사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상장이 폐지되더라도 기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금난 해소를 위한 주요 계열사 매각을 모두 마무리하면 사실상 빈 껍데기만 남는다.
감사의견 없는 결산발표…상장폐지 ‘한걸음 더’
도시바는 지난 11일 감사의견 없이 2016년 4~12월(2~4분)기 결산발표를 내놨다. 상장 기업이 감사의견 없이 결산발표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도시바로선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도시바는 감사법인 PwC아라타와의 의견차 끝에 이 기간 결산을 지난 2월14일, 3월14일 두 차례나 연기했다. PwC는 도시바 경영진 일부가 손실을 줄이고자 내부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있는 만큼 과거 실적의 부정까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도시바측이 이를 거부하며 결국 감사의견 없는 결산발표라는 수습책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도시바가 스스로 발표한 실적 역시 예상대로 나빴다. 이 기간 손익은 5325억엔(약 5조5000억원) 적자. 전년 같은 기간 4794억엔 적자에서 적자 폭이 확대됐다.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도 마이너스 2256억엔으로 채무초과에 빠졌다. 이마저도 회계감사를 거치면 더 늘어날 수 있는 불확정 요소다. 더욱이 도시바 스스로 이번 결산 때 ‘계속기업 전제에 대한 주기’를 붙였다. 스스로 존속에 대한 의심이 들 상황이라고 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 불신은 한 기업을 넘어 일본 기업 전체로 번지려 하고 있어 일본 정부나 거래소도 쉽사리 면죄부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도시바는 이미 충분한 기회를 얻었지만 이를 저버렸다”며 “이제는 주주도 거래소도 용납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시장이 일본측에 보내는 경고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재무상도 이 같은 비난을 의식하듯 12일 “도시바라는 기업 하나 때문에 일본 금융시장에 대한 투자자 전체의 신뢰가 떨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비판했다.
|
주요 계열사 모두 매각…회생하더라도 빈 껍데기만
상장폐지되더라도 회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돈 되는 계열사를 모두 매각하고 나면 사실상 빈 껍데기만 남아 ‘존속’이란 의미 자체가 희석된다.
이 같은 자산 매각이 마무리되면 당장 자금난은 무난히 해결할 수 있다. 플래시 메모리 부분 점유율 세계 2위인 도시바 반도체 인수를 위해 미국 브로드컴은 2조엔, SK하이닉스(000660)는 1조엔대의 입찰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7000억엔대로 추산하는 손실이 추가로 불어나더라도 메울 수 있는 금액이다. 타이완 폭스콘(훙하이·鴻海)는 무려 3조엔(약 30조8000억원)을 써냈다. 일본 정부가 매각대상을 일본이나 미국 기업으로 제한하려는 정책만 포기한다면 상당액을 남길 수 있다. 도시바는 올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도시바는 1875년을 모태로 하는 142년 역사의 기업이다. 공식 출범한 1939년부터 꼽아도 78년이다. 전기·전자회사로 출발했으나 최대 83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반도체부터 방산, 철도, 의료기기, 원전까지 일본 안팎의 주요 사업을 도맡아 왔다. 그러나 2015년 회계부정이 적발된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원전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2015년 인수한 미 원전건설 회사 CB&I스톤앤웹스터에서 7125억엔(약 7조15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며 현 상황에 이르렀다. 올 초 기준 계열사 수는 24개, 구조조정이 끝나는 올 연말이면 20개 미만이 될 전망이다. 도시바는 지난달 말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회사를 재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