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사라진 경제…'딴 세상' 얘기된 3% 성장률

4차 산업혁명 물결 오는데, 韓 제조업은 부진
IoT AI 무인차 3D프린팅 등서 두각 못 나타내
저출산 고령화도 잠재성장률 하락세 '부채질'
  • 등록 2016-09-20 오후 4:57:11

    수정 2016-09-20 오후 6:01:17

한국은행을 제외한 다른 기관들은 향후 5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를 연 3% 이하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각 기관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이동통신사로 잘 알려진 일본의 소프트뱅크. 이 회사가 최근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인 ARM을 인수한 건 IT업계를 넘어 산업계 전반의 ‘빅 뉴스’였다.

손정의 회장이 우리 돈 30조원이 넘는 규모의 ‘깜짝 결정’을 한 이유는 명확했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다. IoT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지능형 기술을 말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스마트폰 외에도 일상의 모든 기기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시스템반도체다. 손 회장은 일각의 ‘무리수’ 지적에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투자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경향은 이미 광범위하다. 반도체사업을 잘 하지 않던 IT업체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구글은 최근 머신러닝 구동을 위한 전용 프로세서 TPU 칩을 공개했다. 아마존은 지난해 이스라엘의 반도체 설계업체 안나푸르나랩을 인수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세계 최강’인 메모리반도체 의존도가 여전히 강하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상황은 많이 좋지 않다”면서 “관련 엔지니어들도 중국으로 다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비단 우리 경제를 그간 먹여살렸던 반도체 뿐만이 아니다. 이재원 한국은행 조사국 과장은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과 비교해 뒤처져있다”면서 “신흥국의 추격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 물결 오는데, 韓 제조업은 부진

움츠러든 산업계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이미 2%대 국면에 진입했다는 추정이 속속 나오고 있다. 3%대 성장률도 이제는 ‘딴 세상’ 얘기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9%로 추정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가진 자본 노동 기술 등 생산요소를 동원했을 때 물가 상승 등 부작용 없이 이뤄낼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말한다.

민간 연구소들의 평가는 더 냉정하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이후 5년간 잠재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예측은 2.7%다.

우리나라는 특히 기술 진보 등을 일컫는 총요소생산성의 하락이 문제다. 예정처는 향후 5년간 총요소생산성의 성장률 기여도를 1.3%포인트로 추정했다. 1980년대(3.5%포인트), 1990년대(2.5%포인트), 2000년대(2.4%포인트) 등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생산성이 높은 주력 산업군이 몰락하는 와중에 새로운 먹거리도 찾지 못하는 현실이 여기에 반영돼있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저서 ‘축적의 시간’에서 “아이폰이 전세계를 바꿔놓았듯이 이번에는 IoT가 그럴 것”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도체 뿐만 아니라 ICT, 바이오, 의료, 플랜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진정한 아키텍처를 만드는 설계자가 존재하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하루 현업을 해결하느라 더 큰 시각으로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IoT 외에 인공지능(AI), 로봇, 무인자동차, 3D프린팅, 바이오 등 새 먹거리는 즐비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한은이 UBS 자료를 인용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순위는 전세계 25위다. 미국(5위) 일본(12위) 독일(13위) 등 이미 성숙한 경제보다 더 낮다.

실제 제조업의 잠재성장률은 부진 일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년 제조업 잠재성장률은 4.4%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김천구 연구위원은 “연구개발(R&D) 확대, 기초·원천 연구 강화 등를 통해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고령화도 잠재성장률 하락세 ‘부채질’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장벽은 또 있다. 바로 인구구조 문제다. 예정처는 향후 5년 노동의 성장률 기여도는 0.1%포인트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5년(0.6%포인트)보다 0.5%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다.

고령화는 우리 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꼽힌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고령층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노동 지도’는 또 격변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총노동투입시간 증가율, 생산가능인구 증가율 등이 모두 떨어질 게 불보듯 뻔하다.

김준기 국회 예정처장은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동이 성장에 기여하는 역할이 낮아지고 있다”면서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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