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은발의 패셔니스타, 다산의 여왕…여풍 부는 EU

다채로운 이력의 프랑스 라가르드, ECB 총재 내정
EU 행정수반에 '7자녀 엄마' 독일 폰데어라이엔 낙점
  • 등록 2019-07-03 오후 5:26:26

    수정 2019-07-03 오후 7:10:33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사진=AFP)
[이데일리 김경민 기자] “결국 유럽은 여성이다”(After all, Europe is a woman)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2일(현지시간) 차기 EU 지도부 요직 5곳 중 두 자리를 여성이 차지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유럽’은 여성형 명사이기도 하다.

이날 EU 지도부와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브뤼셀에서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을 내정했다. 대외적으로 EU를 대표하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는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가,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에는 호세프 보렐 스페인 외무장관이 정해졌다. EU의 주요 보직 2곳을 여성이 꿰찬 것으로 ECB와 집행위원장 모두 여성을 수장으로 맞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초’ 타이틀의 ‘수퍼우먼’ 라가르드

가장 눈에 띄는 건 라가르드 내정자다. 프랑스 재무장관, G7 재무장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까지 올라갔다. 1956년생인 라가르드가 모두 최초의 여성으로 거머쥔 직함들이다.

10대 때 프랑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국가대표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라가르드는 1981년 미국 대형 법률회사인 베이커 앤드 맥킨지에 입사해 반독점법과 노동법 전문 변호사 활약하다. 1999년에는 베이커 앤드 맥킨지의 첫 여성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프랑스 관계에 입문해 상무장관, 농업장관, 재무장관 등에 잇따라 기용됐다.

국제사회에서는 소문난 ‘패셔니스타’이기도 하지만, 탁월한 협상력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재무장관 시절 남유럽 재정 위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유럽 각국의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MF 총재로서도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통화 정책 경험이 없다는 점은 약점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등 세계 경제가 격변기를 맞고 있는 만큼 유럽 경제의 통화 정책 방향을 이끄는 ECB 총재의 지위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간 ECB 총재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은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 옌스 바이트만 독일 연방은행 총재, 브느아 꾀레 ECB 집행이사, 에르키 리이카넨 전 핀란드 중앙은행총재 등 모두 통화 정책 전문가들이다.

비슷한 논란이 IMF 총재 선임 때도 있었다. 당시 라가르드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은 잘해낼 자신이 있다”며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지적을 정면 돌파했다. 라가르드가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지만, 뛰어난 화술과 키워드를 선점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라가르드가 ECB 총재직을 수행하게 되면, ECB의 정책 방향성은 지금처럼 확정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라가르드는 그동안 IMF 총재로서 ECB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AP통신 등은 라가르드가 ECB의 기존 통화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으로 점쳤다.

‘다산의 여왕’ 폰데어라이엔…“출산 늘어야 경제발전”

60세의 폰데어라이엔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13살 때 부모와 독일로 이주했다. 덕분에 프랑스어도 매우 능통하다. 하노버 의대를 졸업한 후 산부인과 의사와 의대 교수로 일하다 42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로 정치에 입문했다. 니더작센주 총리를 지낸 아버지의 후광 속에 늦깎이 입문에도 승승장구했다.

주 정부 가족부 장관으로 활동하던 폰데어라이엔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발탁돼 2005년 가족여성청년부 장관을 맡았다. 이후 노동부 장관에 이어 2013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후 지금까지 직을 수행해온 ‘장수 장관’이다. 메르켈 총리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꼽혔지만, 지난 2017년 총선 이후 연방군 내 장비 부족 및 부실 문제, 모병 부족 문제 등으로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자녀가 7명이라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다. 독일의 평균 출산율은 1.59명이다. 폰데어라이엔은 ‘출산 증가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지론을 펼치며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남성의 2개월 유급 육아 휴직 제도 등을 도입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라가드르와 폰데어라이엔의 지명을 두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회원국 간의 ‘타협의 결과’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유럽의 중요한 두 기관을 여성이 이끌게 된 것은 ‘성비 균형’을 이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의 가장 중요한 두 기관을 역대 처음으로 여성이 이끌게 됐다”고 평했고, 영국 가디언지는 “60년 이상 이어진 남성의 벽을 깬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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