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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헌법불합치’로 뒤집은 것은 태아의 생명권 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임신 기간에 상관 없이 낙태(임신중절) 행위를 무조건 형사처벌토록 한 형법 269조1항(자기낙태죄)은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270조 1항(동의낙태죄)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특히 낙태수술이 음지에서 이뤄지면서 여성의 생명과 안전은 더욱 위협당하고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 돼 실질적 낙태 근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성 평등과 개인 권리 보장을 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에 따라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처벌 받은 여성의 낙태는 66년 만에 범죄의 굴레를 벗게 됐다.
“임신 초기 출산 여부 결정권 행사 가능해야”…‘안전한 낙태권리’ 제시도
헌법재판관 다수(헌법불합치 4, 위헌 3)는 임신 초기 기간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낙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 헌재소장과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자기결정권에는 임신 여성이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해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모자보건법상 일정한 예외(임신으로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24주 이내 허용)를 제외하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하면 처벌하는 것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또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 기간은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봤다.
임산부가 안전한 낙태시술을 받을 권리도 강조했다. 이들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낙태가 안전하게 이뤄지도록 해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을 줄이는 것도 실질적이고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2012년 당시 이동흡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내며 안전한 낙태시술을 위한 국가의 입법조치를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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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58% ‘낙태죄 폐지’…헌재 구성 및 정부 기류 변화도
정부 내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해 5월 낙태죄 헌법소원 공개변론에서 형법 소관부처인 법무부 측은 낙태 행위 형사처벌이 합헌이라고 주장했지만 여성가족부는 정부 부처로는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 입장의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한편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은 “태아 역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라며 합헌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헌재 내에서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모두 합헌으로 판단했다. 이들 재판관은 “태아와 출생한 사람은 생명의 연속적인 발달 과정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생 전의 생성 중인 생명을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생명권 보호는 불완전한 것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태아 역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12년 자기낙태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했는데 만 7년이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선례를 바꿀 만큼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고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헌재 결정을 존중하며 관련 부처가 협력해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