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돈 많은 독신 여성인데” 신종 딥페이크 사기단, 결국

학교처럼 사기 매뉴얼 공부…동남아서 64억원 갈취
와인·골프 등 주제로 대화해 정보 취득 방법 등 교육
'온라인으로만 피해자와 매일 대화하기' 등 숙제도
연애사기 방식으로 접근후 암호화폐 투자 유도 '치밀'
  • 등록 2025-01-06 오후 5:37:54

    수정 2025-01-06 오후 6:34:51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부유한 독신 여성인 것처럼 속여 돈을 뜯어내는 신종 딥페이크 사기단이 홍콩에서 검거됐다.

(사진=AFP)


5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지난주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에서 신종 로맨스·투자 사기 행각을 벌인 범죄 조직 일당 31명을 체포했다.

이 사기단은 매력적인 여성의 딥페이크 이미지를 사용해 부유한 독신 여성인 것처럼 위장하고 피해자를 유혹해 실체가 없는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했다. 이를 통해 챙긴 투자금은 3400만홍콩달러(약 64억 1500만원)에 달했다.

신입 조직원들은 일본어 배우기, 골프, 러닝,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 및 최신 도서 읽기, 자산 구매 또는 여행, 10만홍콩달러(약 1900만원) 이상의 고급 와인 맛보기 등을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교육 받았다.

교육은 학교나 학원 수업처럼 이뤄졌다. 각 주제와 관련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범 답안이 제시됐고, 조직원들은 정말로 공부하는 것처럼 필기 메모까지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예를 들어 런닝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에는 “여성의 가장 큰 자산은 자기 관리라고 생각한다”, 골프에 대한 대화에선 “골프를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을 만나기도 했고, 그저 건강해지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어요”라고 답하도록 예시문이 제시됐다.

범죄 조직원의 매뉴얼 학습 노트. (사진=SCMP 홈페이지)


와인이 대화 주제일 때에는 “저는 와인 시음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하지만 이젠 암호화폐 (업계) 대표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기본적인 것들을 천천히 배우고 있어요. 하하”라고 말하도록 권유됐다.

한 조직원은 수업 노트에 와인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제품으로 알려진 ‘도멘 드 라 로마네꽁티-로마네꽁티 그랑크뤼’(Domaine de la Romanee Conti-Romanee Conti Grand Cru)는 2007년과 2008년 제품이 더 좋은 빈티지라거나, 두 제품 가격 모두 10만홍콩달러 이상이라고 메모해 놓기도 했다.

이러한 교육은 대화를 통해 피해자의 직업이나 교육 수준, 재무 상태 및 암호화폐 투자 여부 등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취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 이를 토대로 피해자가 미래 금전적 보상을 기대하며 15만홍콩달러(약 2826만원)를 투자하도록 설득하는 스크립트도 제공됐다.

이미지도 적극 활용됐다. 마치 지인이 운영하는 고급 시계 가게를 방문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어 게재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가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라인 대화를 유지토록 하거나, 피해자가 조직원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취미에 대해 대화를 매일 나누도록 하는 등 일일 활동 목록도 숙제처럼 제시됐다.

홍콩 경찰은 “조직원들의 메모나 포스트잇 등에는 사기 범행을 저지른 뒤 돈을 벌면 고급 자동차 또는 시계를 구매한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SCMP는 “매우 치밀하게 짜여진 시나리오로 진행된 범죄 행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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