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일만에 풀려난 이재용..산적한 숙제들 어떻게 풀까

  • 등록 2018-02-05 오후 4:50:19

    수정 2018-02-05 오후 4:50:1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 선고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아 353일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삼성그룹이 경영정상화에 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은 무죄가 아닌 집행유예이기에 일정부분 활동에 제약이 따르겠지만, 대내외 활동을 재개하면서 경영 정상화 수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지속된 리더십 공백으로 내부적으로는 위기론이 파다했다. 슈퍼 실적의 견인차 노릇을 한 반도체에서 경쟁국의 견제와 추격이 거세진 데다, 스마트폰과 TV 등 주력 사업에서는 잇따라 ‘경고음’이 켜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복귀로 ‘위기론’을 잠재울 강력한 구심점이 생겼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1년을 허비한 이 부회장은 무너진 삼성의 전열을 가다듬고, 멈춰섰던 ‘경영시계’를 빠르게 돌리기 위해 걸음을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성장위한 M&A·금융계열 인사 속도낼 듯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장기 와병 중인 상황에서 이 부회장마저 구속 수감되면서 삼성의 ‘총수 공백’ 사태는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삼성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1년’인 셈이다. 이 기간 삼성은 신제품 출시나 마케팅 같은 일상적인 경영 활동은 전문경영인에 의해 이뤄졌지만, 문제는 대규모 투자가 전제되는 전략적 결정이었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중장기 투자 계획을 수립하는 전략적 결정은 이 부회장 구속 후 사실상 ‘올스톱’됐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9조2000억원을 들여 미국의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굵직한 M&A(인수합병)가 없다는 점이 단적인 사례다. 총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특성상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 입장에서 치명적이었다. 글로벌 IT 공룡들이 활발한 M&A로 인공지능(AI)·AR(증강현실)·VR(가상현실)·IoT(사물인터넷) 분야의 인재와 사업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는 삼성 금융계열사의 사장단 인사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그간 삼성은 주력인 삼성전자를 필두로 약간의 시차를 두고 물산, 금융 계열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정기인사를 단행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해 11월초 삼성전자가 사장단 인사를 했지만, 다른 계열사들은 잠잠했던 것. 삼성물산이 해를 넘겨 사장단 인사를 진행했지만, 금융 계열사들의 사장단 인사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특히 일부 고령의 CEO들은 60세 이상 퇴진을 의미하는 ‘60세 룰(Rule)’에 반발해 인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나오는 등 리더십 부재를 절감했다.

글로벌경영 재개..보호무역 활로 뚫어야

이 부회장 부재로 그 동안 끊기다시피 했던 글로벌 경영 행보도 다시 기지개를 켤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에는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에릭 슈미트 전 알파벳 회장 등을 만나 구글과의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성사시키는가 하면, 한해 뒤인 2015년엔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나 특허 분쟁을 종결시켰다.

미국 선밸리 컨퍼런스에서 팀 쿡 애플 CEO를 만나 미국 이외 지역에서의 특허 소송을 철회한 것도 이 부회장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뒤 중국의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보아오포럼, 미국 비즈니스 카운실 등에 모두 불참하면서 삼성의 글로벌 경영은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은 올 들어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반도체 특허침해 조사 등으로 보다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를 앞세워 반도체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어 이 부회장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스마트폰과 TV 등 ‘빨간 불’이 켜진 주력 사업도 서둘러 추슬러야 한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터지 애널리틱스(SA)는 올해 스마트폰 시장을 전망하면서 삼성전자의 연간 판매량이 3억1530만대로, 지난해(3억1980만대)보다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화웨이, 오포, 샤오미 등 판매 상위 5개사 가운데 판매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9.2%에 그쳐, 2012년 이후 6년간 유지했던 20% 점유율도 깨질 것으로 관측했다.

TV 사업도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휘청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 세계 TV시장에서 20.3% 점유율(수량 기준)로 12년째 1위 자리는 지켜냈지만, 중국 토종 TV브랜드들의 파상 공세에 1년 전(21.5%)보다는 점유율은 1.2%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중국 TV브랜드들의 점유율을 합치면 32.4%에 달한다. 특히 글로벌 TV시장의 99%가 LCD(액정표시장치) TV인 상황에서 LCD TV용 패널 시장에서 중국업체의 비중이 30%에 달한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삼성전자 TV의 중국 패널업체 의존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차세대 먹거리 발굴이 필수적”이라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로 삼성의 중장기 투자 등에 대한 의사결정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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