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민정 김형환 기자] “고시촌 처음 온 날엔 ‘와, 이게 서울인가’ 생각할 정도로 저렴했는데, 지금은 빵 하나도 마음 편히 못 먹어요.”
공무원 준비생 김모(30)씨는 2018년 대학동 고시촌에 처음 온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자주 가던 백반집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식당마다 기본으로 제공하던 ‘밥 무한리필’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4년 전엔 고시촌 식당이 4000~4500원이었는데 지금은 6500~7000원으로 올랐다”며 “전반적으로 물가가 많이 오르다 보니 고시촌 메리트를 느끼지 못해 동네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일대.(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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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중단 등으로 인한 국제유가, 원자재,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물가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인 참가격에 따르면 4월 기준 서울의 자장면 가격은 6146원으로 지난해 대비 14.1% 상승했다. 냉면 가격은 9.5% 오른 1만192원으로 나타났다.
2일 이데일리가 서울 관악구 대학동과 동작구 노량진동 등 고시촌을 둘러본 결과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고시생과 취업준비생들은 부쩍 오른 물가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9급 공무원 준비생 강정아(24·여)씨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아침을 잔뜩 먹고 나온다고 했다. 강씨는 “용돈이 모자라서 부모님께 손 벌릴 때마다 죄송한데 아침을 많이 먹고 나오면 점심을 안 먹어도 버틸 수 있어서 생활비를 많이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2년째 수험생 생활을 하는 김미정(27·여)씨는 식비가 올라 교통비까지 합치면 한 달 생활비가 빠듯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집에도 눈치가 보여서 돈 아끼려고 학원 근처에 있는 3000원짜리 식당 정기권을 샀다”며 “가끔 스트레스 쌓여서 맛있는 거 먹고 풀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저렴한 학생식당을 자주 찾는다는 취업준비생 이모(26·남)씨는 “생활비 80만원 중에서 식비가 70%를 차지하는데 데이트도 하고 다른 곳에도 쓰려면 먹는 걸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진아(26·여)씨 또한 “요새 김밥 한 줄만 먹어도 5000원은 그냥 나간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커피도 안 마시려고 한다”고 했다.
|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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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 식당가들도 고충이 크다. 식당 주인들은 폭등한 식자재값 만큼 가격을 섣불리 올릴 수도 없어 적자 상태라고 한숨 쉬었다. 고시촌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3·남)씨는 “임대료에 인건비도 올랐는데 물가까지 미친 듯이 올라서 팔수록 적자”라며 “가격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아서 장사를 안 하는 게 나을 정도”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백반집 사장 박모(49·남)씨 또한 “적자를 메우려면 최소 방문 인원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손님도 많지 않아서 이것도 넘기기 힘들다”며 “주변 사장들과 담합을 할 수도 없고 미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분간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물가와 직결되는 생산자물가지수는 4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으며, 4월 기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대비 4.8%로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분간 5%대 물가 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물가 상승을) 강제로 끌어당길 방법도 없고 만약 (정부가) 무리하게 조정하려고 하면 오히려 다른 경제 부작용과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