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일본 도시바에서 분사하는 메모리반도체사업의 새 주인을 찾는 작업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참여한 정부기금이 입맛에 맞는 해외 인수후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회사를 사들이는 방식이 그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국 기업이 우선 배제된데 이어 경쟁상대인 한국과 대만 기업도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애플을 비롯한 미국 업체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9일(현지시간)에 마감되는 도시바 반도체사업 매각 입찰에 지금까지 총 10곳의 잠재적 인수후보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7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한국 SK하이닉스(000660)는 물론이고 대만 폭스콘 테크놀로지그룹, 킹스톤데크놀로지 등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또 회사측 관계자는 베인캐피탈과 실버레이크 파트너스, KKR 등 펀드들의 입찰 참여여부에 대해서는 “이들은 아마 입찰 마감 직전쯤에 들어올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계 기업이나 펀드는 입찰 가격을 불문하고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이날 도시바가 반도체 첨단기술의 중국 유출을 우려해 중국계는 제외했다고 도시바 익명 임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같은 발언이 사실이라면 최근 반도체굴기를 주도하고 있는 칭화유니나 도시바 백색가전을 인수했던 메이디 등이 애초에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도시바 메모리반도체사업을 가져갈 주인에 산업혁신기구와 일본 정부가 선호하는 미국 기업이나 미국계 펀드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로봇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핵심산업의 주요 부품이 되는 메모리반도체사업을 중국과 같은 경쟁국으로 넘겨줄 경우 일본의 산업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하게 될 경우 시장점유율이 크게 확대되는 SK하이닉스나 대만 TSMC 등은 상대적으로 일본 정부가 꺼려할 수 있는 후보다.
도시바 반도체사업은 지분 매각규모에 따라 매각금액은 최저 7000억엔에서 최대 1조8000억엔(원화 최소 6조9800억~최대 17조9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 도시바는 전체 지분가치를 최소 1조5000억엔 이상으로 매겨야만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현재 도시바는 미국 원자력발전 건설사업부문인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에서의 사업손실 7125억엔으로 인해 회사 전체가 부실화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실적 발표까지 두 차례나 연기되면서 주식시장에서도 상장폐지될 위기에 내몰려 있다. 미국 원전사업부문도 경영권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