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급했나, 혈장치료 승인…"백악관 압박 따른 결정" 비판 봇물

美FDA, 혈장치료 긴급승인…트럼프 “대단한날” 자축
美정부, 英백신 긴급사용 승인도 검토…전문가 “검증 부족"
트럼프, 대선 전 판세 뒤집기 시도…“역효과 우려”
  • 등록 2020-08-24 오후 6:34:40

    수정 2020-08-24 오후 9:23: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스테판 한 FDA 연구원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김보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에 걸렸다 회복한 환자의 혈장을 이용한 치료를 긴급 승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뿐더러 대단한 날이라고 자축했다. 공화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나온 발표여서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 유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데이터 부족을 이유로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영국에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에 대해 미국 내 긴급사용 승인(EUA)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며 반발이 커지고 있다.

美FDA, 혈장치료 긴급승인…트럼프 “대단한날” 자축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식품안전국(FDA)은 이날 오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혈장치료제를 입원 후 사흘 안에 처방받은 환자들의 사망률이 감소하고 상태가 호전됐다고 밝혔다. FDA는 현재까지 코로나19 환자 7만명이 혈장치료제를 처방받았으며, 이 중 2만명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치료제의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80세 이하 환자에서 혈장치료제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도 브리핑을 통해 FDA의 긴급승인 소식을 전하며 “중국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싸움에 있어 셀 수 없는 목숨을 구할, 진정으로 역사적인 발표를 하게 돼 기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망률이 35%했다고 전하며 “FDA가 이 치료법이 안전하고 매우 효과적이라는 독립적 판단을 내렸다. (오늘은) 우리가 고대해오던 아주 대단한 날”이라고 자축했다.

그러나 학계 전문가들은 혈장치료의 효능을 증명할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실제 효과가 기대만큼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19일 “혈장치료는 통계적 검증 없이 소규모 시험에서만 테스트됐다”며 “혈장치료가 효과를 볼 수 있는 잠재적 치료법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환자가 무작위적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최우선시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혈장치료가 일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돌파구는 아니라는 게 학계의 일반적 소견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나온 의학적 증거만 가지고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인지, 또 얼만큼 언제 투약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는 지적이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혈장 치료가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많지 않은데도 FDA가 긴급 승인했다”면서 “백악관의 압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의 백신교육센터장인 폴 오핏 박사는 이날 FDA의 결정은 “협박”의 결과물이라며 “적어도 FDA 고위급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나만큼 이번 결정에 분노하는 이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효과를 확인하기 전까진 우리는 이를 공식적으로 내놔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오핏 박사는 FDA가 이날 혈장치료 긴급승인을 발표하면서 근거로 내세운 연구 자료가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전에 게재 여부를 검토하는 동료 평가나 심사도 거치지 못한 상태라며 백악관의 압박에 따른 결정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사진=AFP)


美정부, 英백신 긴급사용 승인도 검토…전문가 “검증 부족”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 승인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달 30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만나 코로나19 백신의 긴급사용 승인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메도스 비서실장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공동 개발하고 있는 백신을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3단계 임상시험이 끝나기 이전인 9월 말에 백신 사용을 승인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FT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그동안 1만명을 대상으로 백신 임상을 진행해 왔는데, 이는 미 FDA 승인을 위한 3만명 임상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아스트라제네카가 3만명 대상 임상시험도 시작하긴 했지만 결과가 나오려면 9월 말 승인을 받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내 코로나19 백신 긴급 사용과 관련, 미 정부와 논의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미국 정부와 (백신) 긴급사용 승인(EUA)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 그런 가능성에 대해 추측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잘라 말했다.

만약 FDA가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할 경우 일반적인 규제 기준을 우회하게 된다. 이는 미 보건당국이 그간 코로나19 백신을 승인에 있어 절차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것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와 관련, 프랜시스 콜린스 미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지난 6월 “백신을 접종할 때마다 약 3만 명의 지원자에게 시험해야 한다”며 “그 수치에 근접하지 않는 한 백신이 효과가 있다는 분석을 할 만큼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도 “비록 우리가 ‘워프 스피드(초고속)’ 백신 개발을 논의했다 하더라도, 백신의 안전성과 과학적 완전함을 향한 노력을 줄이는 식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선 전 판세 뒤집기 시도…“역효과 우려”

이에 외신들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뒤쳐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는 11월 3일 대통령 선거 이전에 백신 사용을 긴급 승인해 판세를 뒤집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선거 전 백신 개발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22일 “FDA가 코로나19 백신과 약물 실험 등록을 늦춘 탓에 연구 결과가 선거 이후로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FT는 오히려 백신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다고 봤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 한다는 것이다. 신문은 FDA 내부 반발 움직임을 전하면서,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최종 임상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긴급사용 승인을 밀어부칠 경우 FDA 지도부의 줄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FDA에서 백신 효력 및 안전성 평가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피터 마크스 생물의약품 평가 및 연구 센터(CBER) 센터장은 지난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안전하지 못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한 뭔가가 (FDA 심의절차를) 통과하는 것을 참고 볼 수 없다”며 “(사퇴)의무를 느낀다. 왜냐면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 국민들에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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