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고래가 나즈막히 외롭게 말을 해
아무리 소리쳐도 닿지 않는 게
사무치게 외로워 조용히 입 다무네
방탄소년단 - 'Whelien 52' 中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ENA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늘 고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변호사는 고래를 아주 좋아해서 매 화마다 향고래, 범고래, 대왕고래 등 다양한 고래 이야기를 중얼거립니다.
지난 13일 방영된 5화에서는 고래 이야기가 단 한번 등장합니다. 현금인출기(ATM) 회사의 의뢰인이 경쟁회사와의 관계를 표현하면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설명할 때 한마디 덧붙이죠. “대왕고래냐 혹등고래냐?”
외로운 고래, 52헤르츠
52헤르츠 고래는 지난 1989년 미 해군이 소련의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만든 수중음향감시체계(SOSUS)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처음에 미 해군은 이 소리를 적 함정의 소리로 생각했지만, 4년 뒤 해양과학자 윌리엄(빌) 왓킨스가 듣고 ‘고래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일반적인 고래는 12~25헤르츠에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52헤르츠 고래는 그보다 더 높은 주파수인 52헤르츠로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래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같은 음역대에서 소리를 내야하지만, 52헤르츠 고래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었습니다.
왓킨스의 팀은 논문에서 “북태평양 지역의 어떤 수중감시체계에서도 (52헤르츠 고래의 소리와) 비슷한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며 “오직 단 한 마리만 52헤르츠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1년 나온 다큐멘터리 ‘가장 외로운 고래: 52를 찾아서’에서도 52헤르츠 고래를 찾기 위한 여정이 담겼습니다. 52헤르츠 고래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고래종이라는 설, 대왕고래와 참고래의 잡종이라는 설, 대왕고래이지만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특정 주파수로 소리를 낸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조지 지먼은 미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잡종설’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우영우는 왜 52헤르츠 고래에 빠졌을까
어린시절부터 자폐 스펙트럼으로 인한 차별 속에서 성장한 우영우에게, 52헤르츠 고래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52헤르츠 고래의 소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의 ‘고래’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는 능동적인 고래입니다. 우영우가 세상과의 ‘벽’에 아랑곳않고 꿋꿋하게 이겨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52헤르츠 고래에게 함께 다니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왓킨스의 12년간의 추적에서도 52헤르츠 고래는 대왕고래의 이동 경로와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지먼 감독은 앞선 인터뷰에서 “(52헤르츠 고래는) 단지 소통의 벽이 있을 뿐 무리 안에서 충분한 ‘이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우영우의 소중한 조력자들은 ‘판타지’가 아니라, 52헤르츠 고래에게 실재하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