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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정계선) 심리로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검찰 자신도 아마 속으로 인정할 거다. 무리한 기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자금 횡령 혐의로 지난 4월 9일 구속기소됐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구속된 이후 62일 만인 이날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원고 직접 읽으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모두 동의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변호인단은 ‘재판 증거에 부동의해 증인을 출석시켜 진실을 다퉈야 한다’고 했다”면서도 “증인 대부분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저와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들이다. 법정에 불러 그들을 추궁하는 게 본인과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투는 것을 국민께 보여드리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고 참담한 일이다. 고심 끝에 다투지 말아달라며 증거(동의를)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의 억울함을 객관적 자료와 법리로 풀어달라고 변호인단에 말했다. 재판부가 이러한 것과 무관하게 검찰 증거의 신빙성을 검토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85년 형님과 처남이 회사를 만들어 현대자동차의 부품국산화 사업에 참여했다. 저는 친척이 관계회사 차리는 것에 대한 비난 염려가 있어 만류했지만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이 ‘부품 국산화 차원에서 하는 건데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고 형님이 하는 거니까 괜찮다’고 했고 정주영 회장도 양해했다고 해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30년간 회사성장 과정에서 소유나 경영을 둘러썬 어떤 갈등이 없던 회사를 국가가 개입하는게 온당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통령 시절 4대강 사업과 제2롯데월드 허가, 청계재단 설립 등을 거론하며 불법자금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저에게 (이건희 회장)사면대가로 삼성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이 충격이고 모욕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에 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시대적 소명인 남북간의 진정한 화해협력과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우리사회가 먼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게 전제가 돼야 한다”며 “바라건데 이번 재판 절차와 결과로 한국사법의 공정성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구체적인 사실은 변호인에게 모두 말했고 재판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주장하겠다”며 “존경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2시 59분쯤 재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했다. 수의가 아닌 짙은 남색 양복 차림의 그는 교도관들의 부축을 받아 호송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