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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6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가진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라는 단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 장관조차도 “우려를 표했다”고 할 정도로 사실상, 한국의 IPEF 참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한국은 적극적인 IPEF 참여 의지를 나타내며 창립 멤버국이 됐다. 사실 쿼드(Quad) 등에는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IPEF에 대해서는 ‘환영’ 의사를 밝히며 초기부터 관여의지를 밝혀왔다. 왜 우리나라는 중국의 반발에도 IPEF 참여를 기꺼이 결정했을까
①아직 ‘흰 도화지’인 IPEF…中 직접적으로 문제삼긴 어려워
IPEF는 공급망 구축이나 디지털 규칙을 만드는 다국간 플랫폼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와 같은 무역협정과는 다르다. 아직은 △무역 △공급망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 크게 4개 분야에서 참여국들이 준수할 규범 또는 규칙을 정하는 느슨한 다자 협의체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IPEF에 무엇을 담길지에 대해 미국은 기본적으로 듣는다는 입장”이라며 “구체적인 것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이야기하자는 방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IPEF가 인태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용이라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이 때문에 당장은 내용은 없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에 불리한 내용으로 구속력 있는 규칙들이 형성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는 꼬투리를 잡고 싶어도 현재로서는 구체화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주체인 미국을 비롯해 참여국 모두 IPEF를 반중 동맹이라고 선언한 바 없다. 중국은 IPEF에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한 바도 없다. 즉, IPEF가 정말로 반중동맹인지, 중국이 보복에 나설만한 ‘핵심이익’을 건드리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투명한 역내 협의체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IPEF에도 이러한 원칙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에도 이같은 입장을 전달하며 소통과 협의를 긴밀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②IPEF 10여개국 참가 예정
IPEF 참여가 사드 사태와 다를 것이라 예상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IPEF에 참여하는 국가가 우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IPEF 출범에 참여하는 창립국가는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10여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만을 콕 집어 보복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③달라진 한중 관계…일방적 경제 보복 어려운듯
사드 사태를 기점으로 달라진 한중간 경제 관계도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외교안보연구소의 김한권 부교수, 표나리 조교수, 최진백 연구교수는 공동저술한 ‘신정부 대중국 정책전망 및 제언’에서 “한중 경제관계는 이미 질적으로 변하여 내용 면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혜택을 보는 관계이기보다는 상호적 혹은 경쟁적인 내용으로 변해왔다”고 지적한다.
중국경제가 ‘세계의 공장’이자 ‘가장 성장하는 소비시장’이었을 때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은 성장하는 내수시장에 뛰어든 우리 기업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그러나 사드 사태로 입은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 자립을 내세우며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자국기업 키우기에 열중하는 중국은 이제 매력적인 시장이라기보다는 위협적인 경쟁자로 성장했다.
반면, 미국과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중요성이 커졌다. 기술경쟁의 승패를 좌우한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이 절대적인 제조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이 한국과 섣부른 관계 악화를 택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김 교수 등은 “미국은 중국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철저한 디커플링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독자적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한국의 기술혁신은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 만큼 첨단기술 영역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