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내 방송을 담당했던 박씨는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여객선 3층에 비치돼 있던 구명조끼가 다 떨어지자 4층으로 올라가 구명조끼를 구해온 뒤 학생들에게 건넨 뒤 “선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나중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선체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구조 노력을 기울인 박씨는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2012년 대학을 휴학하고 사촌오빠의 권유로 청해진해운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홀어머니, 여동생과 생활하며 생계를 도운 효녀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필사적인 구조 활동도 눈길을 끈다. 탑승객 20여명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탈출한 김홍경(58)씨. 그는 배가 기울어지던 30여분 동안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방호스와 커튼을 묶어 1층의 학생 20여명을 위층 난간으로 올려 구조를 도왔다. 그는 제주도에 있는 한 회사에 건축 배관설비사로 취업, 첫 출근을 위해 여객선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김씨는 구조된 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반면 세월호 선장인 이준석(60)씨에게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290여명의 승객을 두고 배를 먼저 탈출했기 때문이다. 선원법은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선장은 인명·선박·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사고 발생 직후인 16일 오전 9시께 구명정을 타고 세월호를 빠져나온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이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해경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