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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오늘은 (원·달러 환율이) 조정을 받을 줄 알았는데…”
18일 오후 들어 A 시중은행 외환 트레이딩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날 하락 출발한 원·달러 환율이 상승 반전을 시도하면서다. 전날 달러당 1227.10원까지 오르며 5년7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을 뿐 아니라 심리적 지지선이던 1220원대마저 깨져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부담이 커진 상태였다. 장이 열리기 전 시장이 전망한 것과 달리 원·달러 환율은 소폭 오르며 또 다시 최고치를 찍었다.
A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간밤 글로벌 금융시장 분위기가 좋았고 장 초반 국내 금융시장과 아시아 주요국 통화 흐름도 원화 강세 요인이 많았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원·달러 환율 최고치 연일 경신…“이례적 현상”
18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30원(0.02%) 오른(원화 약세) 1227.4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0년 7월2일 1228.50원 기록한 이후 5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틀째 최고치를 갈아치운 것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원·달러 환율은 이번달 들어 나홀로 질주하고 있다. 원화는 달러화 대비 2.1% 절하됐다. 같은 기간 달러화 대비 1.3% 절상된 싱가포르 달러와 대조된다. 중국 위안화(CNH) 가치 또한 1.1%가량 높아졌다. 이날도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화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0.13% 절상했지만 위안화 환율과 동조화 흐름을 보이던 원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리적 지지선마저 뚫은 원화…왜?
원화 가치 하락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꼽힌다. 주식시장에서는 지난해 6월 이후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지난 1일 이후 3147억원 순매도했다. 지난달 3조원 가까이 팔아치운 것을 고려하면 매도 규모가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자금은 유출되는 쪽에 무게가 쏠려있다.
채권시장에서의 자금 유출 규모는 더욱 크다. 본드웹에 따르면 외국인은 국채, 통안채 등을 3조3000억원가량 순매도했다. 만기 1년 이하 통안채를 사긴 했지만 ‘팔자’가 더 거센 상황이다.
한 외환딜러는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는 등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졌지만 다른 통화에 비교해서도 원화 가치가 급락한 데는 리얼머니(실수요자)가 빠져나간 영향이 컸다”며 “외국인이 투자금을 회수해 달러로 바꿔나가려는 역송금 수요가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대내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가능성, 북한 관련 지정학적 위험 등도 일부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외환시장 주시”
원·달러 환율 흐름이 심상치 않자 외환당국도 긴장한 상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외환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외환시장에서 급격한 변동이 있을 땐 정부가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관계자 역시 “미세조정 범위에 벗어나면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이라며 “외환시장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시장은 원·달러 환율이 추후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미영 센터장은 “템플턴 등 대형 펀드에서 채권 매도세가 강해지는 등 원화 흐름이 약세로 가고 있다”며 “단기간에 많이 오르긴 했지만 원·달러 환율 수준이 높아진 것 자체가 시장 심리에 영향을 주면서 상승 폭이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