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美 FDPR 적용` 참사 만들 뻔한 외교부의 과욕

산업부, 美상무부와 FDPR 협의하는 사이
외교부 섣불리 "러 독자제재 없다"고 발표
부처 간 조율 실패…일주일 만에 겨우 수습
통상기능 뺏고 뺏긴 두 부처간 신경전 해석도
  • 등록 2022-03-07 오후 4:56:30

    수정 2022-03-07 오후 4:56:30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논란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FDPR 적용 예외 대상국에 한국을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사태는 일단락했지만, 그 과정이 영 개운치 않아서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뤄질 정부 조직개편에서 통상 기능을 `되찾아 오려는 자`(외교부)와 `지키려는 자`(산업통상자원부) 간의 물밑 경쟁이 빚어낸 촌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사용했을 경우 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 조항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달 24일 미 상무부는 이를 근거로 전자(반도체),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등 7개 분야 57개 하위 기술을 활용해 만든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미국의 FDPR 면제국가 32개국 명단에 한국이 빠지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FDPR 규제가 발표되기 직전까지도 “러시아에 대한 독자제재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던 외교부는 기업 피해,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나흘 뒤인 지난 달 28일부터 부랴부랴 전략물자 대러 수출 차단과 현지 금융기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배제 등의 독자 제재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FDPR 발표 후 일주일 만인 지난 3일 면제국가에 포함됐다.

관가에서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외교부의 행태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3일 한미 간 협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 내용을 봐도 그렇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 (면제 대상) 리스트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산업부와 상무부 간 실무진이 협의하며 조율해 왔다”며 “우리 수출통제시스템이 미국과 달라 사전 협의가 많이 필요했다”고 FDPR 면제국 포함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지난 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돈 그레이브스(Don Graves) 미국 상무부 부장관과 한-미간 대 러시아 수출통제 공조 등 양국간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한 뒤 팔꿈치 인사를 나누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산업부)


외교부가 대외무역법과 전략물자수출입고시를 담당하는 수출 통제관련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충분한 협의 없이 “대(對)러시아 독자 제재가 없다”고 발표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심지어 대화 상대가 미 상무부의 산업안보국(BIS)이었는 데도 말이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통상 이슈인 데도 외교부가 주도권을 쥐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켠에서는 “산업부가 외교부에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산업부 측에 책임을 묻기도 했다.

관가에서는 이번 일을 정부 조직 개편을 앞두고 통상 기능을 차지하려는 두 부처 간 신경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외교부의 과욕, 산업부의 견제심리가 작동해 FDPR 논란을 키웠고, 시장에 애꿎은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정부부처 간에 경쟁하는 모습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부처 간 협업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내 통상 기능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통상부에서 분리돼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부)로 이관됐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인수위 역할을 맡았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돌려 놓으려는 논의가 이뤄졌지만, 그대로 산업부에 남아 통상교섭본부로 격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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