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하드웨어는 다 따라온 것 같군요.”
불과 3~4년 전 CES, MWC 같은 세계적인 산업전시회에서 국내 전자업계 고위인사들이 내린 중국(産) 스마트폰 평가다. 그건 소프트웨어 등의 경쟁력은 ‘아직’이라는 뜻이었다. 중국 화웨이 등이 막 부상했지만, 삼성전자 등은 이미 ‘스마트폰 왕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발전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IT업계에서 몇년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중국 샤오미 등이 대약진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샤오미를 사기 시작했다”는 게 산업계 사람들의 목소리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선통신산업의 중국 대비 기술우위는 지난 2008년 3.5년에서 2014년 1.5년으로 줄었다. 샤오미의 성공은 ‘키즈’까지 만들어냈다. ZTE의 ‘누비아’, 화웨이의 ‘아너’, 오포의 ‘원플러스’ 등이다.
이같은 변화는 국내 업체에 큰 타격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24.8%(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로 전년 대비 3%포인트 줄었다. 10위권에는 화웨이 샤오미 레노보 TCL 오포 비보 ZTE 등 중국업체가 7개나 됐다. 배인준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성숙기로 접어들었다”면서 “관련 사업모델도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지형 변화는 우리 경제를 둘러싼 저성장의 징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지난해 연간 국내총생산(GDP) 속보치 2.6%가 우리 경제에 던지는 함의는 간단하지 않다.
불과 1년 만에 2%대로 내려앉은 저성장은 수출(전년 대비 0.4%↑)이 부진했던 탓이다. 민간소비(2.1%↑)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정부의 인위적인 진작책 덕에 오히려 과거 3년 1%대 성장률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 건 수출이란 게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문제는 ‘효자’들의 부진이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김성자 한은 지출국민소득팀 과장은 “2014년부터 이동통신기기의 수출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 과장은 “지난해 반도체의 수출 증가세도 둔화됐다”고도 했다. 연말이 전자업계 최대 성수기임에도 삼성전자(005930)가 지난해 4분기 스마트폰과 반도체 모두 부진했던 건 우리 수출과도 직결돼있다.
‘창조경제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삼성전자도 이 정도인데 다른 산업군은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실제 산업계 인사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직면한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이 주로 꼽힌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석유제품의 수출은 지난해 매달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먹거리의 육성이 절실하지만, 생각만큼 진도는 나가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도 3% 성장률 장담 못할듯…민간은 이미 회의적
전통의 수출 효자들이 부진하면 올해 역시 3%(한은 전망)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세계경기는 더 나빠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6%에서 3.4%로 낮췄다.
이미 민간 쪽은 우리 경제의 3% 성장률을 놓고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마저 2%대 성장률을 보인다면 저성장이 추세적이라는 우려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데 수출이 하락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현실적으로 올해 3% 성장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제조업 경기와 교역이 살고 덩달아 선진국 수요도 오르는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