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에 선화공주 데뷔…이 악물고 여성국극 전통 이을 것"

'여성국극 1세대' 조영숙 명인 인터뷰
여성 소리꾼들의 전통예술 명맥 이어와
내달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4' 출연
"마지막 공연 생각으로 어금니 깨물고 준비"
  • 등록 2024-07-01 오후 6:40:00

    수정 2024-07-01 오후 9:55:03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여성국극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쉬워서 사명감으로 여성국극을 이어왔습니다.”

73년간 여성국극을 지켜온 조영숙(90) 명인의 말이다. ‘여성국극 1세대’이자 국가무형문화유산 발탈(한쪽 발에 탈을 씌우고 하는 놀이) 예능 보유자인 조 명인은 7월 세종문화회관이 20~30대 관객을 겨냥해 선보이는 기획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 24’에 출연한다.

조영숙 명인. (사진=세종문화회관)
공연 제목은 ‘조 도깨비 영숙’. ‘도둑들’ ‘부산행’ 등 영화를 비롯해 다수의 연극·무용에 참여해온 장영규 음악감독, 국가무형문화유산 가곡 이수자이자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 멤버로 활동 중인 박민희가 공동 음악감독 및 연출을 맡았다. 오는 26~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인다.

최근 서울 성북구 작업실에서 만난 조 명인은 “마지막 공연이란 생각으로 어금니가 깨지도록 이 악물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며 “처음엔 그냥 나 혼자 노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영상도 촬영하고 현대 문명과 함께 작업해 즐겁다. 두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고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조 명창은 1951년 광주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한 뒤 현재까지 여성국극 1세대로 활동 중이다. 아버지는 전남 화순 출신 명창 조몽실(1900~1949). 그러나 어머니는 무남독녀인 조 명인을 ‘광대의 딸’로 키우지 않기 위해 북한 원산의 사범학교로 보냈다. 조 명인은 사범학교 재학 시절에 대해 “체육, 무용, 연극, 노래 등 다 안 끼는 곳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넘치는 끼로 이것저것 다 하는 조 명인에게 붙은 별명이 공연 제목인 ‘도깨비’였다.

이번 공연은 조 명인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아 여성국극 ‘선화공주’ 전체를 무대에 올린다. 1장과 2장은 영상으로, 3장부터 영상과 무대 위 배우가 함께 연기하고 4장은 무대 위 연기로 꾸리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공연이다. 조 명인과 그의 제자 4명까지 총 5명이 영상과 무대로 출연한다.

‘선화공주’는 조 명인이 하루에 2~3회씩 공연할 정도로 과거 인기였던 여성국극이다. 등장인물은 서동, 선화공주, 철쇠, 석품, 왕 등 총 5명. 조 명인이 다섯 역할을 모두 소화한다. 조 명인은 “주로 철쇠 역을 맡아 애드리브 연기로 관객에 웃음을 선사했다”며 “선화공주 역은 이번이 처음인데 남들이 주책없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왼쪽부터)박민희 음악감독, 조영숙 명인, 장영규 음악감독. (사진=세종문화회관)
여성국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 중 여성 소리꾼만 나오는 전통예술 공연이다. 1948년 명창 박록주를 필두로 김소희, 박귀희, 임춘앵 등이 우리나라 최초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동호회’를 설립하면서 처음 시작했다. 1950년대 전성기를 맞았으나, 196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지금은 조 명인과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명맥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여성국극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 ‘정년이’가 계기가 됐다. ‘정년이’는 지난해 국립창극단이 창극으로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고, 현재 배우 김태리 주연의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이 드라마의 음악을 맡은 장영규·박민희 음악감독이 자문을 구하고자 조 명인과 만난 것이 이번 공연까지 이어졌다. 장 음악감독은 “전통음악 관련 작업을 하면서 전통을 지켜온 선생님들과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오페라와 뮤지컬은 음악은 비슷하지만 노래하는 법은 다르잖아요. 여성국극과 창극도 그래요. 창극이 음악이 중요한 ‘국악 오페라’라면, 여성국극은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국악 뮤지컬’이죠. 여성국극이 사라지는 것은 창극의 한 축이 없어지는 것과 같아요. 여성국극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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