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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장사가 안돼 대출이자 부담에 허덕이던 A씨는 저리대출을 알아보려던 과정에서 시중은행 직원이라는 B씨를 알게 됐다. A씨가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자 B씨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취급하는 3%대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면서도 현재 신용이 낮아 기존대출금을 일부 갚아야 저리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정이 급했던 A씨는 B씨의 솔깃한 제안을 듣고 고민 끝에 B씨가 알려준 계좌로 기존 대출금 100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B씨는 돈을 받자마자 연락이 닿지 않았다. A씨는 자신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기범인 B씨에게 완전히 속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손을 쓰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 됐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금융 취약계층(저신용자)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이 급증하고 있는데다 대출이자를 갚을 형편도 안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매일 116명이 보이스피싱으로 860만원씩 사기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8월 말 기준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631억원으로 작년 1년간 피해액(2431억원)을 넘어섰다. 상반기에만 1802억원의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고 이후 약 두 달 사이 800억원이 넘는 보이스피싱 사기가 벌어진 것이다. 상반기 기준으로 매일 116명의 피해자가 10억원(1인 평균 860만원)의 피해를 입은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한탕을 노리는 사기범도 늘고 이들이 목표로 하는 취약계층도 증가해 보이스피싱 규모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피해가 급증하자 삼성전자와의 협업을 통해 올 연말부터 ‘갤럭시’ 스마트폰에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위한 인공지능(AI) 어플리케이션(앱)을 기본으로 탑재할 계획이다. 금감원이 지난 2016년부터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실제 목소리 약 7000여건을 제보받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제공한 총 1422개의 ‘사기범 목소리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를 분석해 문자나 진동으로 ‘경고’하는 방식이다. 국내 휴대폰 제조사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관련 앱을 기본 탑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계 자영업자의 SOS…은행권 지원 전년 比 40% 급증
장사가 안돼 빚마저 갚지 못할 처지에 내몰린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개인사업자대출 119’ 프로그램을 통해 대출받은 건수가 5798건, 대출금액은 4801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과 견줘 건수기준으로는 40%(1656건), 금액기준으로는 43.6%(1457억원) 늘었다.
은행권의 지원 규모가 증가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 여파 탓에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한계 개인사업자의 지원요청이 늘어난데다 은행들도 119제도를 통해 적극 지원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영업 실수요자들의 어려움도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 투자 우회로로 지목된 개인사업자 대출 규제를 앞두고 은행권에서 심사를 깐깐하게 진행하다 보니 추석을 맞아 실수요 개인사업자들이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도 크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금유동성이 풍부한 자산가가 많아 대출규제의 실익보다는 자영업자들이 규제 문턱에 걸려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