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식 오일쇼크 또 오나…스태그 배제 못한다

참전 가능성 살려둔 이란 대외 교란 여론전
"레드라인 넘어"…호르무즈해협 영향 주목
이란 참전시 오일쇼크 넘어 스태그 가능성
"조심스런 이스라엘"…亞 시장 일단 혼조세
  • 등록 2023-10-30 오후 4:39:04

    수정 2023-10-30 오후 7:17:58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제5차 중동전쟁’ 확전 공포가 커지면서 1970년대식 오일쇼크가 또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곧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 관측과 함께 엮일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란을 주축으로 한 중동 내 반미·반이스라엘 세력들이 움직일 경우 주요 원유 운송로가 막혀 유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서 한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부상을 입은 어린 소녀를 안은 채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다. (사진=AFP 제공)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 주목

호세인 아미르압돌리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CNN에 나와 “우리는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는 우리의 지령을 받지 않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의 범죄가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은 만큼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 직후 이같은 메시지를 내놓았다.

아미르압돌리히안 장관의 언급은 라이시 대통령이 강경 발언과 비교하면 수위를 다소 조절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 이후 ‘참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언급과 함께 온건한 대외 입장을 섞어가며 특유의 교란 전술을 펴고 있는 셈이다.

이란은 중동 내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의 실질적인 배후다. 이라크 시아파 무장 정파, 시리아 정부,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반군 등 시아파 벨트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까지 이르는 세력이다. 하마스는 이슬람 수니파이지만 이스라엘을 침략자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란과 노선이 같다. 서방에서는 이들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고, 스스로는 ‘저항의 축’이라고 칭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개입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문제는 이란의 개입 강도가 거세질 경우다. 이는 세계 원유 공급의 절대적인 규모를 차지하는 중동 해상 통로를 봉쇄하고 세계 경제를 대혼란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다. 중동의 핵심 원유 해상통로는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바브엘 만데브 해협 등이다. 중동에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석유를 실어나르는 석유 안보의 요츙지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전 세계 하루 해상 석유 수출량의 37%가 이동하는 호르무즈해협이다. 이란의 봉쇄 위협, 유조선 나포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인 탓이다. 바브엘 만데브 해협은 후티반군에 의한 피습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BCA 리서치의 루카야 이브라힘 전략가는 “이번 전쟁이 가자지구를 넘어 확산할 가능성은 70%”라며 “이라크, 이란 등 페르시아만 근방의 산유 지역으로 번질 위험은 30%”라고 추정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동 불안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와 함께 내년 원유 공급을 제약할 것”이라고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악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발생했던 오일쇼크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ING의 프란시스코 퀸타나 투자책임자는 “분쟁의 국제화는 1973년 시나리오에 매우 가깝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기 침체 속에 유가 폭등에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을 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CNBC는 “이-팔 전쟁이 유명 기업들의 경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테면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은 보고서를 통해 이번 전쟁으로 항공사뿐 아니라 특정 공급 업체들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의 수잔 리 메타 재무책임자는 전쟁에 따른 높은 불확실성 탓에 광고지출 감소 가능성을 점쳤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투자 메모를 통해 이스라엘의 올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 11%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란 참전시 스태그 가능성도

더 우려되는 것은 중동과 러시아가 마음 먹고 원유 공급을 조이면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이 전략비축유(SPR)를 추가 방출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SPR을 너무 써버린 탓에 효과가 미미할 수 있어서다. SPR은 말 그대로 ‘비상용’이어서 무한정 쓸 수 없고 언젠가 다시 채워넣어야 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현재 미국 SPR 규모는 3억5127만4000배럴다. 지난 1983년 8월 이후 40년여 만의 최소치다. 팬데믹 직전 6억9000만배럴대였다는 점에서 거의 반토막이 난 것이다.

미국이 ‘중동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어떻게든 대화해 유가 안정을 도모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우디는 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OPEC+는 사우디, 러시아 외에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등이 속해 있다.

금융시장은 일단 긴장감 속에 혼조를 보였다. 이날 중국 본토 상하이종합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12% 오른 3021.55에 거래를 마쳤다. 한국 코스피 지수도 0.34% 상승했다. 반면 일본 닛케이 지수(-0.95%), 호주 ASX 지수(-0.79%) 등은 모두 내렸다. 국제유가는 아시아 시장에서 배럴당 84달러대로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이스라엘이 당초 공언보다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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