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간의 도피 끝에 검찰에 붙잡힌 김 전 회장은 지난 16일 밤 태국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에 경찰의 호송 없이 사촌형 양선길 현 회장과 단둘이 나타났다. 짐은 손에 든 책 한 권이 전부였다.
‘시골무사 이성계’라는 제목의 이 책의 뒷면엔 ‘46세의 이성계, 역성혁명을 꿈꾸기 시작하다’,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 책은 1380년 이성계가 1000여 명 군사로 10배나 많은 1만 명의 왜구를 무찔렀다는 황산대첩을 다뤘다. 책 소개에는 “이성계는 ‘지면 죽음으로 답해야 하고, 이기면 그것으로 그만인 싸움’을 시작한다”는 문장도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본격 검찰 수사를 앞둔 김 전 회장의 심경이나 처지를 보여주는 책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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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도 지난 13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도대체 저는 김성태라는 분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말맞추기 신호’라고 단정했다.
한 장관은 김 전 회장의 국내 송환을 두고 민주당 일각에서 정치적 의도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멀쩡한 기업을 사냥해서 주가조작하고 돈 빼돌리고 정치인에 뒷돈 주고 북한에 몰래 돈 준 범죄인이 수사받다가 해외 도피하면 최선 다해서 잡아 오는 게 국가 임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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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전 비서실장 A씨는 이날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회장으로 재직한 2019~2020년 쌍방울 비서실장을 맡았으며, 그룹이 대북 지원사업을 추진할 당시 사업 제안서 작성 등을 담당했다.
이어 “이화영 부지사는 김성태 회장과 직접 연결되는 선으로 보였고 그 무렵 대북 사업을 하면서 방용철 부회장과 교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진술조서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답한 게 맞다고 했다.
이날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검찰로 압송된 김 전 회장은 횡령 및 배임 혐의, 자본시장법 위반, 뇌물공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쌍방울 그룹을 둘러싼 각종 비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2018년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변호인 수임료를 쌍방울 측이 전환사채 20억 원, 현금 3억 원 등으로 대신 지불했다는 것으로, 깨어있는 시민연대당(이하 깨시민당) 등 시민단체가 의혹을 제기한 뒤 고발했다.
김 전 회장은 대북경협 사업권을 위해 쌍방울 임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64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72억 원)를 북한 인사에게 건넸다는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해서도 ‘개인 돈을 보낸 것’이라며 일부 인정하는 취지로 말한 바 있으나, 입국 과정에서 이 또한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8일까지 김 전 회장의 구속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조사에 주력한 뒤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김 전 회장이 수사망을 피해 오랜 기간 도피한 만큼 영장 발부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