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국내 기업들의 현실을 반영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처벌 위주의 탄소정책 재설정 등 탄소중립 달성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들은 16일 서울신라호텔에서 ‘기후위기: 가능성 있는 미래로의 초대’를 주제로 열린 제13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세션3에서 탄소중립은 불가항력이지만 국내 기업 현실에 맞는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RE100 도전과 산업계 고민’을 주제로 한 세션3에서는 염재호 SK 이사회 의장(19대 고려대 총장)이 좌장으로 참석했고, 폴 디킨슨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설립자(RE100 캠페인 책임자)와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은 불가항력이지만 제조업 중심의 국내 기업의 여건을 고려했을 때 탄소중립 달성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이 쓰는 전력을 ‘재생가능한 에너지(Renewable Energy)로 100% 충당하자’는 RE100 목표 달성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이 주력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제품 생산 공장들 대부분이 자국 내에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는 자국에 생산 공장이 있지 않고 중국이나 동남아에 있다. 우리나라와 현실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나 유럽은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비교적 괜찮다”며 “독일이나 영국 같은 경우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40%가 넘는데 한국은 5%대에 있다”고 부연했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생산 여건도 녹록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관섭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화석연료로 60%의 전기를 생산한다”며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는 6~7%에 불과하다. 이 중 수력이 60~70%”라며 “스웨덴·노르웨이 등 수력 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갖춘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상당히 불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원자력이 대안인데 논란이 많다”며 “탄소를 줄이는 기술이 단기간에 개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계에서 노력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기존 용광로를 통한 철강 생산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45%나 줄일 수 있는 파이넥스 기술은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며 “지금 수소환원제철을 개발 중인데 30년 안에 상용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태희 부회장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지만 거의 대부분 기업들이 녹색프리미엄 제도에 매달리고 있다”며 “기업들이 또 다른 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등 각종 규제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프리미엄 제도란 기업이 전기요금에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서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사용했다는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한국형 RE100 이행수단이다. 녹색프리미엄 제도는 한국형 RE100 이행 수단 중에 가장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탄소중립 정책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우 부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업에 설문을 해 보면 규제가 많아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안전 때문에 생긴 규제나 외국과 달리 높은 규제를 요구하는 조례 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탄소중립 정책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을 처벌하는 구조”라며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을 이끌고 잘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염재호 SK 이사회 의장과 폴 디킨슨 CDP 설립자도 정부이 매우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전 세계 기술 발전 속도를 봤을 때 RE100 목표 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기업이 상당한 재정 자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스스로 바꿔나갈 때 정부는 재정·기술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