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소연 김응열 기자] 삼성전자가 전영현 반도체(DS)부문장 부회장(대표이사 내정)을 DS부문 산하 메모리사업부장까지 맡긴 것은 핵심 사업인 메모리의 ‘초격차’를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가 ‘야전사령관’ 격인 사업부장을 직접 맡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 부회장 특유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통해 반도체 위기론을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전영현, 메모리 초격차 진두지휘삼성전자가 27일 발표한 2025년 정기 사장단 인사는 DS부문의 ‘전영현 체제’ 힘 싣기가 핵심이다. DS부문장인 전 부회장은 DS부문 산하의 메모리사업부 수장을 겸하며 메모리 사업을 직접 챙긴다. 전 부회장은 사업 책임제 강화 차원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내정됐고, SAIT(삼성종합기술원) 원장까지 함께 맡는다.
|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
|
삼성 반도체가 단위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두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전 부회장이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업무를 매일 보고 받으면서 세세하게 실무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전 부회장은 지난 2014년 말~2017년 초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았는데, 거의 8년 만에 다시 메모리를 직접 챙기게 됐다. 재계 한 인사는 “회사 전체를 봐야 하는 대표이사가 특정 사업부 수장을 맡는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라며 “메모리를 둘러싼 내부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금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라며 “파격적인 인사”라고 했다.
특히 당장 내년부터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전쟁에서 다시 승기를 잡는 것은 전 부회장이 맡은 가장 중요한 특명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AI ‘큰 손’ 엔비디아향 5세대 HBM3E 품질 검증(퀄 테스트) 통과가 시급한데, 그 시점은 올해 3분기에서 4분기로 늦어졌다. 이를 타개하고 6세대 HBM4에서 판 뒤집기에 나서야 하는 게 지상과제다.
전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의 살아 있는 신화 같은 존재다. 2010년대에는 ‘권오현 후계자’라는 말도 업계에서 나왔다. LG 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한 이후 승승장구한 자체로 실력은 검증됐다는 것이다. 전자 계열사인 삼성SDI 대표이사로 갔다가 올해 5월 ‘구원투수’로 DS부문에 복귀한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인사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기를 타개하는데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전 부회장의 강한 리더십에 베팅한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AI 열풍으로 주요 빅테크들이 모두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시대”라며 “글로벌 산업계를 주도할 삼성만의 확실한 무기가 잘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를 메모리로 낙점한 것”이라고 했다.
파운드리사업에 사장급 2명 배치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경쟁력 끌어올리기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신임 파운드리사업부장은 한진만 사장이 맡는다. 한 사장은 D램·플래시 설계팀을 거쳐 SSD개발팀장,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 말 DSA총괄로 부임해 현재까지 미국 최전선에서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미국 네트워크가 풍부하다. 글로벌 고객 대응 경험이 남다른 한 사장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글로벌 고객을 확보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할 것으로 삼성은 기대하고 있다.
|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진=삼성전자) |
|
삼성 파운드리사업부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인 TSMC와 경쟁에서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의미 있는 수주를 통해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며 신뢰도를 쌓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TSMC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한 사장은 TSMC 추격의 물꼬를 트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 파운드리사업부에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했다. 파운드리 사업부 CTO 사장에 남석우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을 배치했다. 파운드리사업부에 사장급을 두 명을 새로 배치한 것은 파운드리사업에 더 힘을 주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재용 회장은 최근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는 열망이 크다”며 “분사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해 주목받았다. 고객사에 밀착해 지원하는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미국 네트워크가 풍부한 한 사장은 글로벌 고객사를 유치하고, 남 사장이 수율 확보 등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체제다. 미세공정 수율 개선과 고객 수주 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 김용관 부사장이 DS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눈에 띈다. 그간 반도체 기획·재무업무에서 경험을 쌓아온 전략 기획 전문가인 김 사장은 반도체 경영전략 담당으로 전진배치된다. 김 사장은 전 부회장을 직접 보좌하면서 반도체 지원 전략을 짜는 역할을 맡는다. 사장급 무게감을 두고 DS부문 직속 경영전략담당을 배치해 반도체 경쟁력 조기 회복의 선봉에 서도록 했다.
| 김용관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 (사진=삼성전자) |
|